12.20.2009

土地, 진정한 인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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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7일에 있었던 유엔인권위원회 UPR 회의 이후로, 마침내 유엔총회 본회의에서도 북한내 인권문제 개선을 압박하는 대북 인권결의안을 공식적으로 채택했습니다. [
1] [2] [3] 참으로 잘된 일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북한에 어떤 인권 개선이 가능할지를 생각해보면, 오히려 가슴이 답답해질 뿐입니다. 유엔이 말하는 인권에는 "2%" 가장 절실한 불가결의 문제가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제 서재는 반지하로 이루어진 차고에 있는데, 저는 서재로 내려가서 책장에 꽂혀 있던 故대천덕 신부님의 <우리와 하나님>이라는 책을 꺼내서 펼쳤습니다. 자연스럽게 몇 년 전에 읽다가 멈췄던 부분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시작되는 부분이었는데, 저는 이 글에서 매우 중요한 메세지를 발견했습니다. 아래 그 글의 일부분을 옮겨놓겠습니다.

『유엔에서 30가지 인권에 대한 조건들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토지소유권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제일 중요한 인권이 빠졌습니다. 토지소유권이 없는 인권은 인권이 아닙니다. ... 땅이 없으면 자유가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우리와 하나님> 401쪽.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 정치문제를 통해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정치문제는 연막입니다. 경제문제를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자꾸 정치문제를 거론하는 것뿐입니다. 정치문제 뒤에 숨겨진 경제문제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십시오. 자유를 외치는 소리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물어보십시오.』
<우리와 하나님> 405쪽.

이 글을 읽은 뒤에 저는 이번 겨울이 북한 주민들에게 얼마나 잔인하고 혹독한 시간이 될 것인지, 감히 헤아려 볼 수 조차 없는 그 추위와 굶주림에 대하여 한참동안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
4] 동시에, 기독북한인연합(NKCA) 대표 이민복 씨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탈북자 출신으로 현재 누구보다 앞장서서 묵묵히 북한에 "풍선보내기" 사역을 하고 있는 이민복 씨는 북한의 식량부족 문제에 대하여 꾸준하게 동일한 해결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본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농업과학원 연구원"이었던 이민복 씨는 북한의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集團農(집단농) 체제에서 각 가정으로 하여금 個人農(개인농)을 지을 수 있도록 북한의 농업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하십니다. [
5]

저는 이민복 씨의 주장은 북한의 식량난 문제에 대하여 매우 중요한 메세지를 선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래 그 내용을 부분적으로 발췌해 놓겠습니다.

『나는 「개인농」(個人農)을 하면 「집단농」보다 알곡이 3∼5배나 더 난다는 것을 시험과 경험을 통해서 확인하였습니다. 전국적으로 「개인농」을 도입하면 못해도 2배 이상은 증수되리라고 확신하였습니다. [후에 탈북 도중 중국에서 이것이 사실임을 확인했습니다.] 현장의 농민들도 「개인농」을 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였습니다. 나는 「쌀은 곧 공산주의」라며 한평생 인민을 배부르게 하기 위해 걱정하는 어버이 수령님의 심려를 덜어드리게 되었다고 흐뭇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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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당에서는 과학원에 위임을 하여 과학지도국장을 먼 현지에 있는 나에게 보냈습니다. (그러나) 「당신 말이 옳다. 그러나 이 문제는 정치문제다. 당신은 연구사업만 하라」는 뜻밖의 회답에 저는 놀랐습니다. 식량난 해결의 결정적 방법을 정치문제라고 하여 외면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인민생활 향상이 당정책의 최상의 과제라는 정치적 견지로 보아도 (나의 제안은) 모순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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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석 달 동안 고민 속에 「개인농」을 받아들일 수 없는 공화국의 정치현실을 깨닫게 되면서 정말로 실망하였습니다. 삶의 의미를 잃고 방황하다가 지난 날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남행 길에 올랐습니다. 남에 온 이유는 단순합니다. 「개인농」을 하면 공화국의 식량난은 해결될 수 있다고 마음껏 소리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월남하자는 뜻 자체도 북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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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을 떠나지 않고 중앙당의 말대로 연구사업만 할 수도 있었 습니다. 그러나 과학자의 양심으로는 도저히 연구할 의미를 못 느꼈습니다. 아무리 좋은 기술을 연구해 놓아도 (이것을 이용하여) 생산에서 효과를 낼 수 없는 「집단농」 체제였기 때문입니다. 10년 전 당시 분석을 해보니 공화국의 농업생산 효과성은 30% 정도였는데 현재는 10% 이하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 (남쪽) 와보니 95% 이상입니다. 왜 이렇게 현격한 차이가 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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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닷컴> 이동복ㅣ2008-05-19.

샬롬!

j.w.s.



<조갑제닷컴> 北식량난 해결 길은 '집단농'의 '개인농' 轉換에
金正日에게 보내는 脫北 農業專門家의 편지 [再錄], 이동복ㅣ2008-05-19


[1] "유엔, 대북 인권결의 공식 채택"ㅣ2009-12-20ㅣKBS
[2]
"UPR과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향후 과제"ㅣ2009-12-20ㅣDailyNK
[3]
"유엔총회, 5년 연속 北인권결의안 채택" ㅣ 2009-12-20ㅣDailyNK
[4]
"미 의회, 북한 임의 배분 식량 되갚아라"ㅣ2009-12-16ㅣKBS
[5]
"北식량난 해결 길은 '개인농' 轉換에"ㅣ2008-05-19ㅣ조갑제닷컴

11.04.2009

기독교 인도주의(人道主義)에 대하여....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치인들 중에서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대북정책을 제시하고 있는 정치인을 꼽으라면 아마도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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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가 함께 공저(共著)한 책 <나는 일류국가에 목마르다>가 출시되었습니다. 데일리NK 기사에 의하면, 이 책에서 김문수 지사는 북한문제에 관하여 『휴머니즘이 힘을 갖게 될 때 비로소 민족주의로 포장된 이상한 농간도 힘을 쓰지 못하게 될 것이다.』라고 역설했습니다. 옳습니다! 필자는 김문수 지사의 대북정책에 전적인 지지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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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문제의 핵심은 핵-문제에만 있는 것도 아니요, 식량-문제에만 있는 것도 아니요, "통미봉남이냐? 통남봉미냐?"의 문제도 아닙니다. 사실, 김정일 정권은 물론이요 중국정부 역시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북한에 대한민국 만큼의 인권이 보장되는 자유민주화가 실현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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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가 추구하고 보장하는 그 인권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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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휴머니즘"은 안됩니다! 용어가 정확해야 합니다. 김문수 지사와 조갑제 대표 두 분 모두 충분히 신중하시고, 각각 천주교와 개신교 교인으로써 자신의 신앙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는 사려 깊은 기독교 신자들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휴머니즘"의 기본 바탕 또는 총체적 세계관이 바로 무신론적이고 유물론적인 좌경화 철학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으시리라 여겨집니다. 그러므로, 북한 내 인권문제에 대하여 제대로 접근하는 방법은 "휴머니즘"이 아니라 "휴머니테리아니즘(Humanitarianism)"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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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즘" 즉 "인본주의(人本主義)"와 "휴머니테리아니즘" 즉 "인도주의(人道主義)"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라브리-공동체(L'abri Fellowship)의 설립자인 프란시스 쉐퍼(Francis A. Schaeffer)의 설명을 빌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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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itarianism is being kind and helpful to people, treating people humanly. The humanities are the studies of literature, art, music, etc. -those things which are the products of human creativity. Humanism is the placing of Man at the center of all things and making him the measure of all things.』
("A Christian Manifesto"/pg.23/Crossway/1981/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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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책 <나는 일류국가에 목마르다>에서 사용된 "휴머니즘"이라는 단어가 인본주의적 세계관을 의미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인도주의"와 "휴머니즘"을 번갈아 가면서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김문수 지사의 대북정책에 적극적인 지지를 표하고 있는 만큼, 노심초사 혹시 모를 오류를 미리 짐작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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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문제를 이해하고 해법을 제시함에 있어서 인권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절대로 인간이 역사의 주인공이고 우주의 중심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북한 내 인권문제가 중요한 진정한 이유는, 모든 인간에게는 역사의 참된 주인이시며 온 우주의 창조자 되시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고귀하고 고유한 작품으로써 동일하게 존중받아 마땅한 생명의 존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창세기1:27; 에베소서2:10). 오히려 현재 북한의 체제가 인본주의적이고 무신론적인 세계관의 바탕 위에 세워진 유일수령독재체제이기 때문에 작금과 같은 인권유린 사태가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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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참된 기독교 선교적 인권운동의 바른 방향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다시 한번 프란시스 쉐퍼의 말을 빌려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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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must understand that the question of the dignity of human life is not something on the periphery of Judeo-Christian thinking, but almost in the center of it (though not the center because the center is the existence of God Himself.) But the dignity of human life is unbreakably linked to the existence of the personal-infinite God. It is because there is a personal-infinite God who has made men and women in His own image that they have a unique dignity of life as human beings. Human life then is filled with dignity, and the state and humanistically oriented law have no right and no authority to take human life arbitrarily in the way that it is being taken.』
("A Christian Manifesto"/pg.69/Crossway/1981/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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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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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NK> 김문수 "인권을 무기로 對北정책 수립해야"

10.04.2009

<슬퍼하는 모든 사람을 위로하여라!>


주일 새벽입니다.

새벽부터 필자는 『DJ의 평화통일정책에 대한 평가와 전망』(
복음과상황,2009.09.23)이라는 기사를 읽으며 오늘날 한국 기독교 지성인들의 사관(史觀)에 복음주의의 온전한 종말론(終末論)이 결여 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회의를 겪고 있습니다.

특별히, 기사 마지막 부분에서 한완상 전 부총리께서는 『예수님이 메시아 취임사로 읽으신 구절이 이사야 61장 1~2절인데, 빠뜨리신 게 있어요. 하나님의 신원의 날, 하나님의 복수하신 날을 빼셨어요. 일부러 빼신 것』같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 맞습니다. 필자 역시 주님께서 일부러 빼셨다고 동의합니다. 이유인즉, 주님의 두 번째 오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스코트랜드 출신 신학자 J. Stuart Russell에 의하면, 구약성경에서 이사야서는 '구원자'로 오시는 주님의 초림(初臨)에 대한 예언을 주제로 하였고 재림(再臨)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한편, 주님의 재림에 대한 예언을 주제로 다루고 있는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 말라기서에는 주님을 오실 '심판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Russell의 책 『The Parousia』의 결론 자체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재림하시는 주님의 심판자적 역할에 대하여 매우 구체적인 신약학적 근거를 제시합니다.



이런 종말론적인 이야기는 차치하더라도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한완상 전 부총리께서 과연 이사야서 61장 1절이라도 한 글자 한 글자 제대로 읽으신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남북통일 문제나 한반도평화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 즉 복음에는 '사랑'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공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이사야서 61장 1절 마지막 부분에는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필자에게 이 말씀의 의미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공의(公義/Justice)가 북한의 불의(不義/Injustice)하고 부패한 정권에 대해서도 역시 유효하며, 언젠가 그 효력을 제대로 발휘할 날이 반드시 오리라』는 믿음으로 적용됩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의 대북관(對北觀)은 『연방제통일론』으로 통하는 故 김대중 前 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남북연합→연방자치→통일국가의 3단계)』이 아니라 오히려 대한민국 헌법에 명명백백 명시(明示)되어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헌법1장4조)을 지향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으로서의 충분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모든 북한 주민들은 물론이요, 지금 이 순간에도 짐슴보다 못한 처우(處遇)를 받고 있는 강제수용소 수감자들 역시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법적 테두리 안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연방제통일론』은 북한내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마치 통일 반대운동인냥 부정적인 분위기를 조장(助長)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얼마 전에 강철환 북·중전략연구소연구위원이 제시한 『강제수용소 폐쇄→극단적 공포 소멸, 수령독재 완화→집단지도체제 형성, 개혁개방으로 나갈 수 있는 시나리오(조선닷컴, 2009.09.22)가 현재로서는 북한 문제에 있어서 이사야서 61장 1절 말씀에 가장 근접한 해법이 아닐까 사려됩니다. 북한에 강제수용소가 존재하는 한, 한완상 전 부총리께서 말씀하신 『(북한에게 남한이) 우아하게 지는 것』은 가당찮을 뿐더러 인권유린에 동조하는 꼴이 될 뿐입니다. 적어도 이사야서 61장 1절 말씀에 의하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런 제가 『수구냉전』적 사고에 멈춰있는 것인지, 아니면 제대로 복음적인 것인지 회의적입니다. 다만, 이사야서 61장 2절의 마지막 부분 『
슬퍼하는 모든 사람을 위로하여라』(
공동번역개정판)라는 말씀을 붙잡고, 이 모든 생각과 고민의 가장 확실한 해결방법인 기도의 시간에 주님께 의뢰해봅니다.

제 관점이야 어떻든, 진지한 인터뷰 내용이기에 기사를 소개합니다. 기사 저작권에 대하여 <복음과상황> 측과 제휴한 것이 아님으로, 상업성 웹싸이트에 게시하거나 프린트를 해서 무단 배포하지 말아주십시오.

샬롬!


<복음과상황>
[228호 권두대담] DJ의 평화통일정책에 대한 평가와 전망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한완상 전 부총리

사진출처:
http://www.gosc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114


Copyright © 2009 by Mr. Psalmist (mr.psalmist@gmail.com)


7.17.2009

다니엘의 온유한 野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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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은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다니엘 이야기를 주제로한 『사자굴 속의 다니엘 Daniel's Answer to the King』(브리튼 리비에르 Briton Rivière, 1840-1920) 이라는 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지난해 가을에 출간된 찰스 콜슨의 책 <순전한 믿음> 표지그림으로 사용된 그림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다니엘이라는 성경인물을 떠올리면, 왜인지는 모르지만, 지혜롭고 온순한 미소년
美少年 또는 신실하고 착실한 청년 등과 같은 이미지가 생각납니다. 그런데 <순전한 믿음> 겉표지에 사용된 리비에르의 작품 속에 나타난 다니엘의 모습은 전혀 예상 밖의 인상을 전해줍니다.

그림 속 다니엘은 볼품없는 대머리에다 주름지고 창백한 노인의 얼굴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노쇠
老衰한 얼굴로부터 그윽히 흘러나오는 카리스마는 제 마음과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세상 그 어떤 맹수도 감히 도전할 수 없는 강렬한 내적-야성野性이 다니엘이 가만히 서 있는 시간과 공간을 압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나운 사자들이 굶주려있는 살벌
殺伐한 사자굴 속에서도, 작은 창으로 유유히 흘러들어오는 달빛을 온몸으로 맞으며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묵상하고 있는 다니엘의 온유한 야성; 당장 죽음이 임박해 있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주님께 얼굴을 돌리는 그의 올곧은 자세가 놀라웠습니다. 다니엘의 이 온유한 기품氣品에 굶주린 사자들마져 두려움을 느끼고, 암사자 한마리는 그가 응시하는 하늘을 힐끔 훔쳐보려합니다.

"기독교는 강요하는 게 아니라 제안한다. 복음은 대제안이다." <순전한 믿음, 330쪽>

브리튼 리비에르의 작품으로 묘사되는 찰스 콜슨의 책 마지막 장, 마지막 문단이 시작되는 첫 두 문장입니다. 노장
老將 찰스 콜슨의 이 짧은 두 문장은 복음의 점잖은 면을 말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치 굶주린 사자굴 속으로 걸어서 들어가는 노인 다니엘의 위풍당당威風堂堂함과 같이, 기독교의 온유한 야성은 이 시대 문화와 풍조風潮를 반드시 압도한다는 확신에 찬 선언과도 같습니다.

사실 이 시대 모든 그리스도인-나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회복이 있다면 바로 사자굴 속의 다니엘이나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예수에게서 나타난 겸손하고 온유한 야성의 회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순전한 믿음> 제8장 “신분교환”이라는 부분에서 인용된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의 이야기는 우리 시대 기독교가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그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제시해줍니다.

"....4월9일 아침 5시에서 6시 사이, 이들의 사형이 집행되었다.

수용소 의사는 본회퍼가 죽음을 맞던 순간을 기억해냈다.

『반쯤 열린 감방 문 사이로 본회퍼 목사님이 죄수복을 벗기 전에 바닥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뜨겁게 기도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그의 기도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는 너무나 뜨거웠고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을 너무도 강하게 확신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형 집행장에서 그는 다시 짧은 기도를 드린 후 용감하고 침착하게 교수대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몇 초 후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거의 50년을 의사로 일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그렇게 완전히 순종하며 죽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디트리히 본회퍼가 죽은 지 3주 후에 베를린은 해방되었다." <순전한 믿음, 185쪽>



참고: 디트리히 본회퍼의 시 "
나는 누구인가?"


6.07.2009

"내 슬픔의 노래를 기쁨의 춤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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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에서는 몇몇 목회자들이 뉴스앤조이(
『무책임한 당신, 이제 내려오세요』 김양호)나 프레시안(
『이명박은 다윗에게 배우라』 김기현)등의 신문매체를 통해서 故 노무현 前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의 관계를 구약성서의 사울과 다윗의 관계에 빗대어 비교하는 우매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즉, 자살한 사울의 죽음에 대하여 다윗이 진심으로 애도하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여줬듯이, 이명박 대통령 역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을 진심으로 애도하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허튼 풍자諷刺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근거 없는 심학적 성경 읽기”에 대하여 단 두 마디로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사울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었습니다.
둘째, 다윗은 사울의 자살시도를 미화하지 않았습니다.

엄격한 의미에서 사울은 자살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의 죽음은 오히려 타인의 도움에 의한 자의적恣意的 안락사安樂死에 가깝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조금더 정확한 이해를 얻기 위해서는 우선 사무엘상,하 내용의 전체적인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는 자가 자기 입맛에 맞게 텍스트의 부분적인 장면을 골라서 자기가 주장하는 정치적 입장을 옹호하는 것은 그야말로 이단사설異端邪說입니다.

죽음 직전의 사울은 전쟁 중에 적군들에게 포위되어 당장 죽음이 임박해 있는 상태였습니다. 세상적인 관점으로 볼 때에 이런 상황에 처한 한 나라의 지도자가 스스로 자결을 결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적군의 포로가 되어 온갖 모욕적인 수모를 당하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바에야 차라리 장렬한 최후를 스스로 결정하는 모습이 왕다운 죽음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자기의 무기 담당 병사에게....네 칼을 뽑아서 찔러라. 저 할례받지 못한 이방인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능욕하지 못하도록” 하라고 명령했으나, 그 병사가 사울의 명령을 따르지 못하자 자기가 직접 “칼을 뽑아서, 그 위에 엎어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삼상31:4).

불행히도, 칼 위에 엎어진 사울은 칼(또는 창) 위에 매달린 채 몇 시간 동안이나 죽지 못하고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지나가는 아말렉 출신 한 젊은이가 이 장면을 목격하였고, 사울은 그 아말렉 출신 젊은이에게 “어서 나를 죽여 다오. 아직 목숨이 붙어 있기는 하나,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다” 하고 간절히 부탁합니다. 그래서 아말렉 출신 젊은이가 사울을 대신하여 그의 목숨을 끊어줍니다. 한마디로, 사울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자의적 안락사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순간 다윗의 반응입니다. 요즘같이 존엄사尊嚴死니 안락사安樂死니 하는 생명경시生命輕視 풍조風潮가 팽배한 이 시대의 타락한 관점으로 보자면, 자살을 시도한 사울을 안락사시킨 아말렉 젊은이의 행동은 칭찬 받아 마땅할 일이지 처형 당할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를 처형시킵니다. 그 때에 죽어가는 아말렉 젊은이에게 다윗은 이렇게 말해줍니다. “네가 죽는 것은 너의 탓이다. 네가 너의 입으로 ‘주님께서 기름을 부어서 세우신 분을 제가 죽였습니다.’ 하고 너의 죄를 시인하였다”(삼하1:16).

다윗은 결코 사울의 자살 시도를 영웅적으로 미화하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사울의 자살을 미화하려 했다면, 사울의 영웅적 자살시도를 도운 아말렉 젊은이의 공을 높이 칭찬해줬어야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의 행동을 오히려 왕을 "살해"(삼하1:14)한 것으로 규정하고 그 즉석에서 처형합니다. 다윗은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의 영역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분명히 이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설사 그 사람이 왕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한편, 다윗이 사울에 대한 비보悲報를 듣게 되었을 때 깊은 통탄을 터뜨린 진정한 이유는 단순히 사울의 죽음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사울의 타락으로 인하여 이방민족들로부터 온갖 수모와 박해를 받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오랜 신음소리와, 하나님이 세우신 이스라엘의 왕이 일개 이방인 조무래기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사실, 절친한 동무이자 이스라엘의 왕자인 요나단의 죽음(삼하9:1), 그리고 이 비극에 대하여 가장 애통해 하실 주님의 마음을 다윗 자신의 심장으로 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죽음을 대하는 다윗의 또 다른 면을 살펴보면 성경말씀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메세지가 무엇인지 더욱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하 12장에는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 다윗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가 병에 걸려서 죽어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악 때문에 무고한 어린 생명이 병들어 죽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식음을 전폐하고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합니다. 다윗의 간구하는 모습이 어찌나 간절하였던지, 그의 신하들은 그 아이가 죽었을 때 그 사실을 다윗에게 “말하기를 두려워했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아이가 죽은 것을 다윗이 알게 된다면 그로인한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를 상하게 하거나 "악한 마음을 품고" 어떤 일을 저지를지 예측할 수 없는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상황으로 보여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반응은 정반대였습니다.

막상 아이의 죽음을 알게 된 다윗은 그 즉시 훌훌 털고 일어나서 시원하게 목욕을 하고, 몸에 기름을 바르고, 새 옷으로 갈아 입고는 “성전으로 들어가서 주님께 경배”하였습니다. 이때 성전으로 올라간 다윗은 주님께서 아직 자기를 포기하시지 않으셨음을, 주님으로부터 직접, 확인받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도 그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성전으로 돌아오던 때에 "주님 앞에서 온 힘을 다하여 힘차게 춤을"(삼하6:14) 추던 순간을 기억해내며 시편30편을 찬양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간 다윗은 신하들에게 한 상 거하게 차려오라고 명령하여 그들 앞에서 식사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에 의아해진 신하들에게 다윗은 이렇게 대답해줍니다. "아이가 살아 있을 때에, 내가 금식하면서 운 것은, 혹시 주께서 나를 불쌍히 여겨 주셔서, 그 아이를 살려 주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오. 그러나 이제는, 그 아이가 죽었는데, 무엇 때문에 내가 계속 금식하겠소? 내가 그를 다시 돌아오게 할 수가 있겠소? 나는 그에게로 갈 수 있지만, 그는 나에게로 올 수가 없소.” (삼하12:22,23
)

다윗의 이 대답에는 죽음에 대한 다윗 자신의 분명한 이해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즉, 모든 생명의 주인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 자신의 죽음 역시 함부로 선택할 수 없다는 죽음에 대한 분명한 가치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사울보다 오히려 다윗이 자살기도를 할만한 큰 곤경에 더 많이 처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다윗은 자기가 믿는 주 하나님을 더욱 굳게 의지”(삼상30:6)함으로,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역전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성경은 위기에 처한 다윗과 사울의 차이점을 암시하여 줌으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생명을 함부로 포기하지 않고 주님을 깊이 신뢰하는 다윗의 영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전직 대통령이 절벽에서 투신하고, 목사가 스스로 목을 매는 이 정신분열증적인 시대에, 성경을 바르게 읽고 살아있는 생명들의 영혼을 흔들어 깨워줘야 할 말씀사역자라면, 더 이상 죽은자에 대한 슬픔을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다윗의 영성은 슬픔에 머물러있는 영성이 아니라, "내 슬픔의 노래를 기쁨의 춤으로"(시편30:11) 승화昇華시켜주시는 주님을 신뢰하는 영성입니다. 그러므로 故人의 자살을 풍자와 슬픔으로 포장하여 미화하려는 사악한 이단사설은 이제 그만둬야 할 때입니다.

더욱이 우리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말로 감히 형언할 수 없는 십자가의 고통을 거부하지 않으시고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기억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남에서는 매해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있고, 이북에서는 아직도 공개처형과 같은 비인간적 학살행위가 자행되고 있는 이 한반도의 모순 속에서 주님의 음성에 귀기울여야 합니다.

"왜들 자고 있느냐? 시험에 들지 않도록, 일어나서 기도하여라." (누가복음22:46)

5.26.2009

"오고오는 세대에" 당당히 전할 수 있는 것.

:
지난 5월 23일 새벽(한국 시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 사저(
私邸) 뒤에 있는 야산 절벽에서 투신자살(投身自殺)했습니다. 이제 고인이 되신 노 전 대통령은 죽음 그 이후의 세계에 영속(永續)하게 되셨습니다. 이 세상 사람 그 누구도 노 전 대통령의 죽음 그 이후의 상태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이 세상 사람 그 누구도 아직 죽음을 경험하지 못했으므로, 당연히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먼저, 5월 20일 아침(이하 시애틀 시간)에는 좋지 않은 사고가 있었습니다. 제 장인어른께서 갑작스러운 뇌졸중(
Ischemic Stroke)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지신 것입니다.
다행히 응급의료진의 신속하고 효과적인 대처 덕분에 생명에 위험이 끼쳐지지는 않았지만, 장인어른의 좌뇌 신경계가 멈춰버려서 오른쪽 몸 전체가 마비되셨습니다. 나중에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지신 후에야 겨우 사람을 알아보시고 눈인사 정도를 하실 수 있는 상태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인 5월22일 저녁 6시 즈음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담한 죽음 소식을 듣게되었습니다. 그날 저녁에 저는 병원 휴게실에서 제 두살배기 아들 요한이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장인어른께 병문안을 오신 김모 집사님께서 저를 보시자마자 하신 첫마디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충격적인 소식이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소식에 마음이 덜커덕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정치적으로 노 전 대통령을 지지했든 반대했든 간에 상관없이, 마치 오랜 가족을 잃은 듯, 마음이 무척 아프고 공허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순간 아찔한 생각이들었습니다. 노 전 대통령처럼 평생을 법정에서 투쟁하다시피 했고, 한 나라의 전직 대통령이라는 비범(
非凡)한 삶을 살아내신 분이 겨우 뇌물 수수 사건에 대한 검찰수사의 중압감과 무너지는 자존심, 수치심, 책임감 등의 감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소중한 생명을 함부로 내던지는 이 세상의 현실에 대하여 요한이와 같은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지 노심초사(勞心焦思)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연일(
連日), 인터넷 뉴스나 교회 주일설교 내용에도 어김없이 충격적인 소식에 대한 안타까운 메세지가 이어졌습니다.

한편, 5월24일 저녁 즈음부터 장인어른은 부드러운 음식물을 겨우겨우 드시기 시작했습니다. 담당 신경외과 의사의 말에 의하면, 입을 오물오물 움직이면서 음식물을 식도로 넘길 수 있다는 것은 이제 “큰 희망이 있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참고로, 같은 날 아침까지만 해도 평생 손발을 못쓰시게 되실 뿐 아니라 배에다 호스를 꽂아 넣어서 영양분을 공급해야될지도 모르겠다고 아내에게만 알려줬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장인어른의 우측 운동신경계(오른쪽 팔, 다리 등)가 되살아나고 있고, 물리치료와 작업요법(
Occupational Therapy)등의 매우 점진적인 치료방법을 통해서 조금씩 회복될 수 있다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다만, 멈춰버린 왼쪽 뇌에게 오른쪽 몸의 존재를 상기시키고 마비된 근육들을 움직이도록 의식적으로 명령하여 스스로의 몸을 포기하지 않도록 장인어른 자신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권면해주었습니다.

그날 밤, 아내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늘 하던대로 아침에 묵상한 말씀을 다시 펼쳐보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오늘은 미국 현충일 'Memorial Day' 입니다. 오늘 날씨는 그야말로 완벽한 시애틀의 여름날씨였습니다. 햇볕은 화창하고 바람은 시원할 뿐 아니라,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마침 이번 Memorial Day 공휴일은 제 아버지 생신과 겹치기 때문에 몇달 전부터 부모님과 형님가족 그리고 우리가족이 모두 함께 1박 2일 여행을 가기로 계획을 잡아놓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와 제 아내는 모든 계획을 취소하고 아침부터 마치 피서라도 가듯 장인어른이 입원하신 병원으로 출발했습니다.

아내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한쪽 손에는 낡은 새번역 성경을 꼭 쥐고 반대편 손에는 요한이를 부둥켜 안고, 입원실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제가 입원실 문 앞에 도착하자, 아내는 장인어른께 “시편 71편을 어젯밤 읽었는데 아빠에게 꼭 읽어줘야 한다”면서 담대한 목소리로 한절한절 또박또박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 말씀은 제 귓전에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졌습니다. 장인어른은 마비되어 일그러지는 오른쪽 얼굴 근육을 어렵사리 움직이시며 매절마다 "아멘!"이라고 외치셨습니다. 그때마다 요한이는 자기도 알아들을 수 있다는냥 방긋방긋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 순간 제 머리 속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소중한 생명을 포기하시기 직전에 자신이 평소 사용하시던 컴퓨터 화면에 띄어놓았다는 유서(유서 전문) 내용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노 전 대통령에게 이 시편 말씀을 담대하게 읽어줄 수 있었다면 이토록 안타까운 비극은 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시편 제71편 (표준새번역)


5.20.2009

'알타이-어권 연합'과 탈북난민센터 비전.

:
현재 북한 문제에 있어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민하고 생각을 모아야 하는 부분은 아시아 대륙 전체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탈북자들의 난민자격 인정과 제3국(예:몽골)에 일종의 난민센터 건설을 위한 국제적인 교섭을 추진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번에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중앙아시아 순방길에 동행한 소설가 황석영씨의
'알타이-어권 연합'에 대한 발언은 적어도 단순한 이상주의적 상상에 불과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명박 정권 내에 제3국에 탈북난민센터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민간적인 차원에서 모든 한국인들의 마음에 각리 흩어져 있는 탈북자들에 대한 사랑의 '불'을 지펴야 하고, 그리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실제적인 '일'을 추진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합니다.

전략적으로 우선 세계 모든 나라들에 흩어져 있는 한국인 이민자들은 중국정부가 중국내 탈북자들에게 난민자격을 부여하고 탈북자 강제 체포 및 북송 등의 비인도적 행위를 즉각 중단 하도록 촉구하기 위해서 각국에 있는
중국대사관에 항의 전화 및 집요한 평화시위를 실행해야 할 것입니다.

동시에 대한민국 정부로 하여금 제3국에 탈북난민센터 건설계획에 집중하고 실제적인 일을 진행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지와 관심을 보여줘야 합니다. 또한,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 명시되어 있듯이 국민으로써 마땅히 주장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의 헌법적 범위에 탈북자들 역시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재차 명심시켜줘야 합니다.

특별히 미국내 한인 이민교회는 그 어떤 일보다 앞장서서 아시아 대륙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은커녕 노예 취급을 당하고 있는 탈북자들을 돌아보고 물심양면
物心兩面으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불행히도 탈북자들의 어려움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고 세련된 비즈니스식 "선교사업"에만 몰두하고 있는 몇몇 미국내 한인 이민교회 對북선교사업부의 편협한 시야를 비판합니다!

미국내 중국대사관: (202) 328-2500
http://www.china-embassy.org/eng/

미국내 중국영사관:

http://www.china-embassy.org/eng/hzqz/t84229.htm



4.22.2009

마스길, 시편 53편 묵상.

:
:
노무현 전대통령의 뇌물賂物 수수收受 사건 수사과정이 이제 최종 결론 부분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도덕적 청렴과 결백을 가장 중요한 정치적 슬로건slogan으로 삼아오던 지난 참여정부 전체에 수치羞恥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습니다. 필자는 지난 참여정부가 추구해온 '퍼주기식' 대북정책이나 반미적 사고방식 등을 비판해왔지만, 이번에 밝혀진 뇌물 수수 사건에 대하여 수치심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인즉슨, 이번 사건의 중심이 누구보다 앞장서서 한국 정치계가 자성할 것과 청렴결백할 것을 촉구해온 자칭 진보세력의 대표적인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사람들이 당대 문화-사회적 상황에서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가장 진취적이고 청렴결백한 삶을 추구했었다는 사실을 전해줍니다. 그중에서 정치적 통수권자로써 대표적인 인물을 한 명만 꼽으라면은 당연히 이스라엘 왕국의 두번째 왕이었던 다윗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경은 다윗의 도덕적 부패 행각에 대한 노골적인 기록을 오늘날까지 만천하에 폭로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충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을 저지르고 임신까지 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범죄행위를 감추기 위한 음모를 계획하고 끝내는 충신 우리아를 죽여버립니다. 이와같은 내용은 사무엘하 11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하 12장은, 한 국가의 통치자인 다윗이 철저하게 은폐시킨 범죄사실이 나단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전격적인 개입으로 인해 만천하에 공개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편 51편에서 다윗은 사무엘하 12장의 상황에 대하여 자신의 윤리적 완벽주의가 철저하게 깨지는 처절한 심정과 수치심을 고백하고, 주님의 죄사함의 은혜를 구하는 간절한 마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을 묵상말씀인 시편 53편 역시 다윗이 쓴 시입니다. 시편 53편의 제목 부분에는 "마스길"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나옵니다. 일반적으로 "마스길"은 음악적인 형식이나 문학적인 장르를 의미하는 표제어標題語 정도로 설명됩니다. 구체적으로, 이 단어의 문자적인 의미는 "교훈을 위한" 혹은 "지혜롭게 하는"이라는 뜻입니다. 이 시를 묵상하며 시인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교훈을 위한" 또는 "지혜롭게 하는" 메세지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우선 주제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시편 51편에서 시인 다윗이 자신의 개인적인 죄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면, 시편 53편은 전인류적 죄人類 에 대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이 시에서 시인은 전인류의 도덕적 부패와 그로 인한 수치심을 토로하며, 인류 전체의 타락에 대하여 통곡하듯 슬퍼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모두 다른 길로 빗나가서
_하나같이 썪었으니,
_착한 일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구나.
_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한 자냐?
_그들이 밥먹듯이
_내 백성을 먹으면서
_나 하나님을 부르지 않는구나.
_하나님이 경건하지 못한 자들의 뼈를 흩으셨기에,
_그들은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도
_크게 두려워할 것이다.
_하나님이 그들을 물리치셨으니,
_그들이 수치를 당할 것이다.』 (
시편 53:3~5, 새번역)

하지만 시인은 그보다 먼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 자체가 바로 부패한 것이라는 전제를 이 시의 시작으로 삼고 있습니다. 시인은, 온통 썩은 악취가 진동하는 참담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영적인 통찰력을 구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 속으로
_“하나님이 없다” 하는구나.
_그들은 한결같이 썩어서 더러우니,
_바른 일 하는 사람 아무도 없구나.
_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_사람을 굽어보시면서,
_지혜로운 사람이 있는지,
_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는지를 살펴보신다.』 (
시편 53:1~2, 새번역)

이 짧은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시인은, 역설적으로, 자신의 눈에 적나라하게 나타난 세상의 온갖 부정과 부패가 오히려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을 품을 수 있는 실제적인 이유가 된다는 것을 선포하게 됩니다. (로마서 3장 참조) 즉, 시인은 오직 오실 그리스도만이 참된 의인義人이시며 그분만이 부정과 부패가 없는 하나님 나라의 유일한 통치자이시니 기뻐하라는 내용의 예언자적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시온에서 나오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십시오!
_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그들의 땅으로 되돌려보내실 때에,
_야곱은 기뻐하고, 이스라엘은 즐거워할 것이다.』
(시편 53:6, 새번역)

이 시대 그리스도인은 시인의 성숙한 영성을 배워야 합니다. 특별히, 이 시대 젊은 그리스도인은 진보냐 보수냐의 차원을 떠나서 이번 뇌물 수수 사건에 대하여 통쾌해 한다거나 절망적인 비관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시인이 애통하는 마음으로 노래하고 있듯이, 사실은 인류 전체가 썩었고 빗나간 길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을 묵상하는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 또는 유명인사들의 부정과 부패를 대할 때마다, 역설적으로, 자기 자신의 죄와 구원의 사건을 기억하고 인류의 타락으로 인한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악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8:18~39 참조)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 보며 영원히 현존하시는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는지 찾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시편 53편이 노래하고 있는 마스길, 교훈이요 지혜입니다.

Copyright © 2009 by Mr. Psalmist (
mr.psalmist@gmail.com)

4.13.2009

성령강림과 통일한국

부활절 이후 첫번째 월요일 새벽입니다.

이 글을 읽게되실 모든 분들의 가정과 삶에 부활의 기쁨과 능력이 충만히 나타나는 부활절 지내셨기를 바랍니다.

기독교 전통 달력에 따르자면, 이제는 부활하신 주님의 승천하심을 기념하는 승천절昇天節과 오순절五旬節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오순절은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려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여러 날이 되지 않아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사도행전1:4-5, 새번역)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명령과 약속에만 의지하여 성령의 강림降臨을 기다리는 제자들의 내면적 평화와 혼란, 환희歡喜와 거룩한 두려움, 기대감과 무기력함이 동시에 교차되는 영성적 상태에 대하여 묵상하는 절기입니다.

초대교회 시대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사도행전 2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비롯한 인류 전체에 전혀 새로운 역사전환歷史轉換의 기점
起點으로써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21세기 새로운 통일한국을 준비하는 모든 한국인 그리스도인에게도 새롭게 강림하시는 성령의 역사使가 필요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한국에서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새터민 청소년들에 대한 기사 두 편을 소개합니다. 남한 사회로 안전하게 들어온 새터민들이 겪고 있는 문화적, 이념적, 정서적 장벽들에 대한 소식을 접할 때마다, 언제 어떤 형태로 이루어질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통일한국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시대 모든 한국인 그리스도인들이 무엇보다 먼저 오순절 성령강림을 기다리는 제자들의 마음가짐으로 그날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통일한국에 대한 문화사회적 대비도 해야하고, 정치적, 사회복지-정책적인 대비책도 마련해 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치열한 어려움은 통일한국을 이루게 될 구성원들 사이의 영적인 충돌에 있을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제자들이 먼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하나님 나라의 능력으로 준비될 때, 새로운 통일한국의 선물
Present을 우리에게 현존하는 오늘Present로 맞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활절 이후 오순절까지, 이 기간동안 '성령강림'에 대하여 묵상하는 것은 통일한국을 준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취해야 할 더없이 중요한 행동입니다.

[
업코리아]
미 언론 “탈북자들, 한국서 이중고”
'죄의식'과 '불안감'에 시달려...일자리 찾기도 어려워

[
Washington Post]
N. Korean Defectors Bewildered By the South
Teenagers are particularly bewildered.

Copyright © 2009 by Mr. Psalmist (mr.psalmist@gmail.com)

4.08.2009

북한 미사일 발사 이후, 두 가지 생각

생각 1.

북한이 미사일을 쐈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은, 북한의 미숙한 미사일 기술에 대하여 겨우 이정도였느냐는 식의 통쾌한 조소
嘲笑를 보내고 있습니다. 아마도 북한의 미사일 기술이 정확성이나 추진력 면에서 허점 투성이라는 것을 이번 기회에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정말 안심해도 괜찮다는 것 같습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안심해도 괜찮겠습니까?

이 시대에 깨어있는 크리스챤이라면, 그럴 수 없습니다! 북한이 이번에 발사한 미사일 개발 및 준비과정에 들어간 비용은 대략 3억
달러 정도라고 합니다. 단순히 '3억 달러'라고 읽으면 이 금액의 현실적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아서 공책에다 몇 번이나 써보고 계산해보았습니다.

'$300,000,000.00' 이렇게 미국 USD 개념으로 쓰면 조금 더 현실적인 무게가 느껴집니다.

'4063억 5000만원' (1354.50 ₩/$ 기준, 2008년 4월 8일 마감,
한국은행) 이렇게 한국 KRW 개념으로 써보면, 그 중압감이 더 강해집니다.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빌리자면, "
지난해 여름 기준으로 3억달러는 국제시장에서 쌀 100만t을 구입할 수 있는 액수"이며 "이는 북한이 겪고 있는 식량난을 1년 정도 해소하고 남는 액수로, 옥수수 등 잡곡을 사면 훨씬 더 오랜기간 식량난을" 해결 할 수 있는 액수라고 합니다.

자그마치 쌀 100만 톤, 즉 10,0000,0000 킬로그램 (10억kg)을 미사일 한 발에 실어서 태평양 물고기들에게 뿌려준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국제 커뮤니케이션학적인 관점에서 북한의 이번 대포동2호 발사에 대한 분석을 해보자면, 김정일 정권 제3기를 위한 내부단속용 더하기 외교적 경고용 폭죽 정도의 의도가 주된 목적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에게 있어서 이번 미사일 발사 사건은 핵미사일에 버금가는 매우 심각하고 잔인한 대
식량난食糧難이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탄과 같은 것입니다.

게다가 북한의 무분별한 행동에 대한 응답 또는 응징으로써 적어도 미국과 일본은 반드시 금융적, 경제적, 정치적 압박을 가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앞으로 최소한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북한과 자유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의 공식 외교 채널들은 차단되거나 어려움이 많이 생길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의 조총련이나 북미, 호주 등의 지역에서 활동하는 친북단체들에 대한 조사 및 감시가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대북선교단체들과 복음적인 NGO단체들의 발이 더욱 바빠질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생각 2.

요즘 저는 매일 아침마다 이메일로 전달 받는 ‘모라비안 데일리 텍스트
Moravian Daily Text’를 따라서 말씀묵상을 하고 있습니다. 마침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 하기 전날 아침에 묵상한 말씀은 로마서 13장 말씀이었습니다.

로마서 13장 1절에서 7절 말씀은 저와 같이 고집스럽고 저돌적이며 논쟁적인 사람에게는 언제나 나 자신에 대하여 돌아보고 고민하게 만드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이미 있는 권세들도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것입니다.”
(롬 13:1, 새번역)

제 두 번째 생각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의 당위
當爲와 법적인 실재實在에 대한 것입니다. 김정일 정권 역시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권세를 부여하신 정당한 국가정부로 인정해야 하느냐, 아니면 “반국가단체”로 정의하고 인정하지 말아야 하느냐는 문제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4조에 의하면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숭실대 법대에서 헌법학을 가르치는 강경근 교수에 의하면 헌법 제4조에 나오는 “자유민주적”이라는 말은 “자유민주주의”를 의미하는 단어로써, 북한의 “인민민주주의”와 명확하게 구분되는 고유명사固有名詞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자동적으로 대한민국 시민이거나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북한 정부를 정당한 국가정부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북한 체제 안에 살고 있는 북한주민들의 경우는 조금 다른 상황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번째 생각은 해답을 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 선생이 "로마서연구"라는 책에서 잠깐 거론한 바 있는 “극히 드물게” 있는 그 “어떤 경우”가 바로 북한의 경우가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즉, 북한의 정권 지배계층은 모든 한국인 그리스도인들의 '평화적 항의'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정치의 부정부패가 극에 달하여 백성이 고통을 당하는 경우라도, 크리스천은 평화적인 수단에만 호소해야 한다. 먼저 겸손과 온화로써 권력자를 향하여 항의(프로테스트)해야 한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항의하며, 그 밖에 평화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모든 수단을 취해야 한다. 백절불굴
百折不屈의 마음으로 목적을 관철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그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무력에 호소하여 반란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평화적인 수단에만 한하고, 그 성공 여부는 모두 하나님의 손에 맡겨야 한다.” ("로마서연구 下" 254-255쪽)

그러므로 제 두 번째 생각은, 북한의 부패한 정권 지배계층에 대한 ‘평화적 항의’란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부끄럽게도, 아직까지는 그저 질문만 이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단지 모든 그리스도인의 최선의 행동이자 존재방식인 묵상하는 삶에 다시 관심을 집중시키며, 오늘 읽을 묵상말씀인 시편 46편을 펼쳐봅니다.

제 46 편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
지휘자를 따라 알라못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 고라 자손의 시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며,
우리의 힘이시며,
어려운 고비마다
우리 곁에 계시는 구원자이시니,
땅이 흔들리고 산이 무너져
바다 속으로 빠져 들어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물이 소리를 내면서 거품을 내뿜고
산들이 노하여서 뒤흔들려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셀라)

오, 강이여! 그대의 줄기들이
하나님의 성을 즐겁게 하며,
가장 높으신 분의 거룩한 처소를
즐겁게 하는구나.
하나님이 그 성 안에 계시니,
그 성이 흔들리지 않는다.
동틀녘에 하나님이 도와주신다.
민족들이 으르렁거리고
왕국들이 흔들리는데,
주님이 한 번 호령하시면
땅이 녹는다.
만군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야곱의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시다. (셀라)

땅을 황무지로 만드신
주님의 놀라운 능력을
와서 보아라.
땅 끝까지 전쟁을 그치게 하시고,
활을 부러뜨리고 창을 꺾고
방패를 불사르신다.
너희는 잠깐 손을 멈추고,
내가 하나님인 줄 알아라.
내가 뭇 나라로부터 높임을 받는다.
내가 이 땅에서 높임을 받는다.
만군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야곱의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시다. (셀라)

(시편 46편,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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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2009

유엔, 북한 인권 결의안 의결. 그리고 북한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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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뉴스에 의하면, 북한은 '광명성 2호'(또는 '대포동 2호') 로케트(또는 미사일) 발사 준비과정을 거의 다 완료했습니다. 그야말로 미사일 발사 초읽기 순서에 들어간 셈입니다.

북한의 이러한 무분별한 움직임에 가장 불안해하는 나라는 일본입니다. 특별히 '제2차세계대전'의 종국을 알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피해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이고, 게다가 북한은 일본 국민들을 납치하고 오리발만 내놓고 있는 불법무도
不法無道한 테러집단이라는 것이 현재 일본 정부의 입장이기 때문에 더욱 민감하고 강경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편,
미국 정부의 입장은 아직도 애매모호하기만 합니다. 공교롭게도 지난 3월 17일에는 북한·중국 접경지에서 국경을 넘었다는 이유로 미국인 여기자 두명이 북한군 초병에게 체포되었고 곧장 평양으로 이송되어 지금까지 강제 억류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현재 미국 정부는 이들의 신변 문제 때문에 북한에 대한 정부차원의 언행을 일체 자제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난안難安하고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같이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뒤엉켜서 헝클어진 실 타래 같은 한반도 주변국들의 분위기 속에서도 실마리가 하나씩 풀려가고 있는듯한 신호를 주는 좋은 소식이 있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유엔에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인권 결의안을 의결지었다는 소식입니다. 어제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회의에서 유엔-인권이사회는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권유린 실태에 대하여 상세하게 상의하였고, 이와 관련된 9개 항목의 인권 결의안을 다수결(찬성-26, 반대-6, 기권-15)로 채택했습니다. 이 아홉가지 항목들 중에는 북한 내에서의 시민활동, 정치활동, 종교활동에 관련된 모든 인권문제를 유엔에 보고할 것과, 탈북자들의 인권문제 역시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침 지난주에 시기적절한 창설 기자회견을 열었던 <북한의 종교자유와 인권회복을 위한 국제기독교기구>가 어떤 활동을 시작하게 될른지 기대가 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
북한의 종교자유와 인권회복을 위한 국제기독교기구> 창설 기자회견 발표 내용과 지난달 27일 서울 연지동 연동교회에서 발표한 <평화와 통일을 위한 한국교회 3·1선언문>의 내용이 서로 상충되고 있다는 생각이 마음에 걸립니다. 아직도 북한을 품을 준비가 되어있지 못한 한국교회의 현실적인 상황을 다시금 깨닫게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는 정말 북한선교에 대한 핵심적인 문제를 다뤄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단도직입적
單刀直入的으로 말하자면, 현재 북한 내 처소(지하)교회의 존재存在 여부與否와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의 당위성當爲性 문제를 직설적으로 다뤄야 합니다. 처소교회와 조그련이 서로 상이하게 다른 존재방식存在方式을 보이고 있는 현실을 바르게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북한교회 연구모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한국교회(비록 교단과 교파로 나뉘어져 있지만)와 처소교회와 조그련, 이 셋의 관계성에 대하여 논의하고 공존과 교류를 위한 대안과 방법을 함께 모색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만약에 이런 논의 자체가 불가능하고 너무 위험하다면, 그 이유와 위험적 요소들을 분명히 규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교회의 대북선교 단체들은 소위 '평화적 논의'라는 명목하에 더이상 내향적이고 소극적인 생각만 하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한국교회는
북한의 보이지 않는 '지하'-'처소'-'가정'교회에 대하여 명명明明하게 증언해주고 모든 방면에서 엄호掩護해줘야 합니다. 지금, 북한 안에서 자생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한 국제적인 노력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북한선교는 없다는 것을 확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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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2009

북한 미사일 발사 문제에 대한 1인 성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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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사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 준비' 문제와 이에 대응하는 일본·미국의 미사일 요격 발언에 대하여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이 들립니다. 중요한 것은, 북한의 '벼랑끝 전략'에 현재의 상황이 끌려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의 오래된 '미사일-외교-유도' 전략에 북한이 오히려 말려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려해야 할 문제는 한반도 전쟁 발발 가능성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클린턴 미 국무장관을 앞세워 비양심적 외교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미국 정부에 대한 문제입니다.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북한의 지배계층과 모종의 거래를 추진하며 심리적인 줄다리기를 하고있는 오바마 정권의 "슈퍼스타" 외교정책이 문제입니다.

오바마 정부는 북한과의 외교에 있어서 더 양심적이어야 합니다! 오바마 정부가 대북정책을 어떻게 추진할른지 앞으로 더 지켜봐야겠지만, 분명한 것은 북한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권문제의 실태를 무시한 그 어떤 對北정책도 가짜일 뿐입니다.

북한선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눈감은 채, 무책임한 선교전략 또는 촛점이 어긋난 문화사회적 연구를 하는 것은 지나치게 정치적인 입지에만 신경쓰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의 기독교 선교계가 북한 문제를 대하는 올바른 문제의식은, '남한 사회에서 교회가 정치적 중립성을 어떻게 지킬 것이냐?'가 아니라, '북한의 가짜 정부를 어떻게 와해시킬 것이냐'에 그 촛점이 맞춰져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평화적으로 북한의 현 정권을 완전히 와해시킬 것인가?' 이 고민을 함께해야 합니다. 이 고민의 중심에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는 북한 사람들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이 있어야 합니다.

북한 정권 와해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이나 고민은 군사-외교 분야 전문가들에게 맡긴다 하더라도, 전쟁이 나도 죽고, 전쟁이 나지 않아도 어차피 굶어 죽고있는 북한 사람들의 인권문제에 대한 부담과 고민은 한국의 기독교 선교계가 마땅히 끌어안아야 합니다! 이들에게는 지금 피난처가 필요합니다.

불행히도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한 대책은 전혀 없고, 정치적 균형감각만 개발하고 있는 한국의 기독교 선교계가 안타까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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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28th, 2009




2.07.2009

新나치즘적 '개혁을위한종교네트워크' 비판.

(The "house of David" Inscription from Tel Dan & The Mesha Stele or Moabite 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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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we, the late-born, really know anything at all about someone who lived in the past?"
-Grete Weil, The Bride Pr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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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김진호 목사(한백교회,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외 '개혁을위한종교인네트워크' 라는 모임에서 류태영 박사(前 건국대총장)가 지난 1월 15일에 "한-이 친선협회 '2009년 신년하례 및 회원의 밤' 행사"에서 발언한 내용에 대하여 지엽적인 비판을 제시하고,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침공에 대한 정당방위설을 지지하는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에 대하여 이른바 "홀로코스트 신학"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그리고, 20세기 초에 있었던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사건에 대하여서도 역시 매우 지엽적이고 단편적인 관점을 제시하고 유대인들의 역사인식 자체를 한꺼번에 뭉뚱그려서 사소한 피해의식 정도로 격하시켜버렸다.
:
결론적으로 이 모임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기독교가 추구해야할 유일한 정신은 '평화주의'라는 비기독교적 감언이설(이스라엘 주변국들에 대한)을 나름대로 논리를 갖춰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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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부분은 시오니즘(Zionizm)을 비판하기 위한 간접적인 수단으로 다윗과 솔로몬의 왕국에 대한 역사가 "발명된" 것이라는 구시대적 발상을 단어만 바꿔서 또다시 끄집어낸 것이다. 도대체 언제적 이야기인가? The Mesha Stele, The Tel Dan Stele 등등이 발굴되고, 기독교 신학계에 고고학적 '붐'이 불어오기 시작하고, 역사비평 고등비평 등의 성서비평 방법론으로 성경을 쪼개며 유대인의 역사를 무참히 짓밟던 나치 신학자들이나, 동독의 다윗학자이며 작가인 Stefan Heym의 소설이 신학계를 뒤흔들던 때가 도대체 언제적 이야기인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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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을위한종교인네트워크' 모임의 대외적 취지가 기독교-평화주의 옹호에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들의 시오니즘에 대한 접근방식 자체는 1950년대부터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나기 시작한 신나치주의(Neo-Nazizm)의 또다른 반유대주의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한반도에서 구닥다리 신나치주의를 주장해서 얻을만한 것이 무어란 말인가? 혹시, 마치 북한 눈치보기를 하듯이, 이슬람 눈치보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머리가 다 아프다.

1.26.2009

미국 한인교회에서 멸종된 "실크세대" 리더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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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에 기재된 "낡은 386세대는 가라. 20~30대 실크세대가 나간다"라는 변희재 실크로드CEO포럼 회장의 칼럼을 읽으면서 시애틀 지역에 있는 한인 이민-교회의 386세대 지도자들에게 '그들보다 더 젊은 아래 세대들에게 잠재되어 있는 야성과 포부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요즘 이민-교회 표면 위로 나타나고 있는 386 세대들의 점진적인 기성화(旣成化) 현상과 그동안 주로 수평이동을 통한 성장에 취중해온 목회적 가치관을 평가해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불과 4,5년쯤 전만해도 386세대 목회자가 이끄는 한인이민-교회에 대한 이미지는 마치 젊은 세대들을 받아들이고 세워주는 젊은 리더쉽을 언제까지나 보여줄 것처럼 여겨졌었습니다. 안타깝게도 386세대 역시 중년기를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유신세대'와 동일한 기성 가치관으로 회귀(回歸)하고 있는 듯한 신호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중요한 문제는 386세대 리더들에 대한 비판적인 분석과 새로운 방향제시를 해줄 수 있는 젊은 오피니언 뱅크들인 이른바 "실크세대"가 한인 이민-교회 리더쉽 안에서 '멸종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긍정의 심리학'이나 '내적 상처 치유'와 같은 일종의 기독교 심리학 "붐"이 교계에 불어오면서부터 386세대에 대한 일체의 부정적인 의견을 입밖에 내놓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그나마 남아있는 “실크세대" 리더들의 현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큰 증거로 "실크세대"와 그보다 더 아래 세대에 속하는 미국 이민 2세와 1.5세 청장년 리더급들이 지역교회를 떠나고 있는 현상과 그 어떤 교단이나 단체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마치 개인이나 그룹을 위한 블로그를 개설하듯이, 작은 교회를 개척하고 있는 움직임을 주목해봐야 할 것입니다.

아래의 기사 내용은 한국의 경제, 경영, 인터넷 문화, 사회 등의 측면에서 세대 간의 엇갈린 이해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기사에서 묘사되고 있는 386세대와 그 아래 세대들 사이의 관계성 문제는 현재의 이민 교회 상황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기사참조1:
조선일보 "낡은 386세대는 가라. 20~30대 실크세대가 나간다"
기사참조2:
동아일보 사진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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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009

토지는 하나님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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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과 북한의 오랜 아픔과 슬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지독한 갈등.
불운의 경찰관과 용산 철거민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혓바늘이 쓰리다.

"토지는 다 하나님 것입니다!"

작고하신 대천덕 신부님의 마지막 외침.
귓전으로 왕왕 들린다.
입모양만 재잘거린다.

(내용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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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2009

초토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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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니제르 서북부 타우아 지방 한 마을에서 영양실조에 걸린 한 살짜리 아기가 앙상한 손가락으로 엄마의 입술을 매만지고 있는 모습』 <사진출처: Daily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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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무차별적인 미사일 로켓 공격이 이스라엘 민간인 지역에까지 날라오자, 이에 참다 못한 이스라엘군이 수천명의 가자시 시민들의 전화기에 "집에 무기가 은닉되었을 수 있음으로 집을 버리고 떠나야 한다는 아랍어로된 셀-폰 메세지를"(Associated Press 12.28.2008) 보냈을 즈음인 12월 27일 밤, 지구 반대편 시애틀에 있는 우리 집에서는 아들 요한가 심한 열을 내며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습니다.
:
그리고 이스라엘의 엄청난 미사일 반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연이어 가자 지구의 민간인 사망자 수가 늘어간다는 뉴스 헤드라인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요한이의 증상도 점점 더 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1월 1일부터 요한이는 아예 복통을 일으키며 구토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구토증상이 너무 심해서 꼬박 나흘을 굶더니 1월 5일, 월요일 저녁부터는 다시 열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한밤 중에 뒤틀리는 속과 끓어 오르는 고열로 자지러지는 요한이를 안고 아내와 함께 Seattle Children's Hospital 응급실로 달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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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레벌떡 요한이를 부둥켜안고 응급실 안으로 들어와서 주위를 잠시 살펴보았습니다. 응급실 매인홀에는 유난히 스페인어와 아랍어를 사용하는 이민자들이 많이 앉아 있었습니다. 미리와서 기다리고 있는 다른 아이들의 상태를 보아하니 요한이 정도로는 꾀 오래 기다려야 될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요한이가 긴장이 되었던지 갑자기 소리를 앙~하고 지르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앞에 있던 다른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순서를 양보해주어서 제일 먼저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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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 응급실 안으로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곧 젊은 백인 여자 의사 선생님이 들어왔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아주 간단한 진찰과 몇가지 질문을 해보시고는 요한이가 바이러스(Roseola Virus)에 감염된 것 같다는 예후(豫後)를 내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바이러스에 대한 처방은, 허황하게도, "게토레이" 스포츠 음료수라는 말을 해주셨습니다. 이 바이러스에는 시간 외에 다른 특별한 치료방법은 없고, 단지 구토증상을 다스리고 탈수증에 빠지지 않도록 흡수력이 빠른 스포츠 음료수를 조금씩 양을 늘려가는 방식으로 마시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
요한이는 난생 처음 맛보는 과일향 스포츠 음료수를 아주 신나게 마시더니 응급실 침대에서 쿨쿨 잠에 들어버렸습니다. 그 사이에 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잠깐 밖으로 나가서 텔레비젼 뉴스를 시청하고 있는 남자 간호사들 사이에 끼어들었습니다. 뉴스의 내용은 이스라엘이 지상전에 전격적으로 돌입하면서 가자시 민간인 수십명이 사망했고 그들 중에는 요한이만한 어린아이들도 끼어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이스라엘군이 식수와 전기 등은 물론이고 구호품이 들어가는 길목까지 모두 차단해 버렸다는 특파원의 멘트를 듣는 순간 눈살이 찌푸려졌습니다. 사랑하는 자식이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해서 가만히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어야만 하는 팔레스타인인 부모들의 처절한 마음이 피부로, 심장으로, 그리고 온몸으로 전율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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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가다듬고 응급실 방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요한이는 그새 일어나서 수술용 고무 장갑으로 만든 풍선-물고기를 엄마 앞에 흔들어대며 재미있게 놀고 있었습니다. 조금 후에 다른 의사 선생님이 들어와서 요한이가 차고 있던 기저귀에 소변이 두툼하게 채워진 것을 확인하더니 곧장 퇴원을 허락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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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7일부터 요한이는 원기를 완전히 회복했고 감량되었던 8 파운드 정도의 체중도 금세 다시 되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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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같은 날인 1월 7일, 가자시에서는 하마스의 함정에 빠진 이스라엘군이 "난민들이 대거 모여 있는 가자지구 UN학교"를 폭격해버렸습니다. 그날, 수많은 어린 생명들이 무참히 스러졌습니다. 이스라엘군을 그 시간 그곳으로 유인한 하마스 무장단체의 잘못인지? 아니면 군사적 논리에만 의지한 이스라엘군의 잘못인지? 가슴이 답답해지고 속에서 메시꺼움 같은 느낌이 올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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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저는 이스라엘의 하마스 공격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이스라엘이 정당한 자기방어를 하고있다는 부시 대통령의 발언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저에게 들려주시는 음성은 그런 정치적인 판단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음성은, 바로 그 문제의 소용돌이 속에 뛰어들 수 있는 용기를 구하라는 촉구와도 같습니다.
:
늦은 밤인 지금까지, 한번 제대로 들어본적도 없는 엄청난 폭격소리가 제 귓전에 멤돌고 있습니다. 동시에, 바로 며칠 전까지 밤새도록 들리던 요한이 울음소리 같은 환청이 들리는듯 합니다. 그리고 마치 나 자신의 용기없음을 고해(告解)라도 하듯, 책장에서 시집 한 권을 꺼내들어 시 한편을 곱씹어 봅니다.

초토의 시 9
- 구 상 -

땅이 꺼지는 이 요란 속에서도
언제나 당신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게 하옵소서.

내 눈을 스쳐가는 허깨비와 무지개가
당신 빛으로 스러지게 하옵소서.

부끄러운 이 알몸을 가리울
풀잎 하나 주옵소서.

나의 노래는 당신의 사랑입니다.
당신의 이름이 내 혀를 닳게 하옵소서.

저기 다가오는 불장마 속에서
노아의 배를 타게 하옵소서.

그러나 저기 꽃잎모양 스러져 가는
어린 양들과 한가지로 있게 하옵소서.

("구상문학총서 제3권 깨똥밭" 27쪽, 홍성사)

Associated Press 12.28.2008: http://www.aparchive.com/Search.aspx?remem=x&st=k&kw=Gazans%2C+cell-phone+message#1U590217

사진 출처: 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26053&C_CC=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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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2009

가자사태에 대한 1인 성명서

:
"We have not settled Palestine together with the Arabs but alongside them.
Settlement alongside, when two nations inhabit the same country, which
fails to become settlement together with, must necessarily become a state
against. This is bound to happen here -- and there will be no return to a
mere alongside. But despite all the obstacles in our path, the way is still
open for reaching a settlement together with. And I do not know how much
time is left to us. What I do know is that if we do not attain [such a
relationship with the Arabs of Palestine], we will never realize the aims of
Zionism. We are being put to the test for the third time in this country."
(October 1929, By Martin Buber)
:
:

이스라엘 정부는 하마스의 무장세력과 군사기관들의 "완전한 무력화"라는 군사적 목표를 추구함과 동시에, 모든 자원과 기술 그리고 인력을 동원해서라도 가자 지구 민간인들을 비롯한 어린아이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지원해주는 본질적인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

만약에 이스라엘 정부가 하마스 무장세력의 무력화라는 군사적인 목표에만 지나치게 치중해서 민간인들의 인권과 생명을 유린하는 일을 지속하게 된다면, 지금까지 이스라엘 정부의 하마스 무장세력 무력화 작전을 다방면으로 지원해오던 외국의 지지자들을 통탄하게 만드는 것이다.

지금 즉시 가지 지구에 식수와 전기를 다시 연결·공급하고, 평화·중립적인 의료단체 및 구호단체들 의 출입을 적극적으로 도모해야 한다. 그리고 UN 안보리 소속 국제안보지원군(ISAF)과 UN 산하 구호단체들에게 가자지구로의 길을 개방하고 UN의 개입 역시 스스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물론 UN의 정치화와 비중립화 문제가 있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으며, 요르단이나 이란 이라크 그리고 레바논 등의 주변국들의 압력이 있다는 것 역시 잘 알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UN을 비롯한 구호단체들의 개입을 허용하고 가자의 민간인들에 대한 구호 계획을 즉시 시작해야 할 때이다.

시오니즘Zionism 이전에 야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시고 열강들 사이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존재하며 "관계"하게 하신 그 본 뜻을 다시금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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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6th,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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