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까지 한국어로 된 대부분의 인터넷 언론매체들은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김연아 선수에 대하여 온갖 아름다운 극찬으로 가득찬 기사를 서로 다투어 게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은 지금 인터넷 지면은, 마치 언제 그랬냐는듯, 부산에서 일어난 소위 '김길태 사건'으로 거의 도배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변덕스럽기 그지없는 것 같습니다. 김연아 선수가 빙판 위에서 마치 한 마리 우아한 백조처럼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있을 때만 해도 인간의 아름다움과 완전함에 대한 감탄으로 꽉 차 있던 마음이, 동일한 인간인 김길태에 대해서는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추잡한 느낌들로 경악을 금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진출처:연합뉴스오늘 필자가 김길태 사건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김길태'라는 이름을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던 중에 김길태의 이름을 한자로 표기해주는 인터넷판 신문이 전혀 없다는 점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김연아(金姸兒) 선수의 한자어 이름에 대해서는 "예쁜(姸) 아이(兒)가 금(金) 메달을 딴 것"(조갑제닷컴)이라는 해석까지 나와있는 반면, 김길태의 이름에 대해서는 "길태라는 이름은 고아, 즉 길에서 태어난 아이라는 의미"(위키백과)라는 참으로 안타까운 추측만 나돌 뿐입니다. 실제로 어린 김길태는 태어나자마자 친부모에게 버림을 받았고 양부모의 손에 입양돼 길러진 고아입니다.
분명히 '김길태 사건'은 양심을 지닌 인간이라면 그 누구도 함부로 긍휼을 말하거나 용서에 대해서 논할 수 없는 참으로 잔혹하고도 파렴치한 비인도적(非人道的) 범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래 기사를 읽으며 김길태의 불쌍한 삶에 대하여 통감(痛感)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김길태는 인간으로써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권리인 친부모로부터의 아낌없는 사랑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래 기사는 조선닷컴에 실린 김길태의 성장과정에 대한 기사의 일부분입니다.
『김길태(33)는 삶과 범죄 행태가 통상적이지 않아 행동을 예측하기 어려운 인물이다.//그는 30여년 전 부산 사상구 주례동 한 교회 앞에 버려졌다가 현재의 부모를 만나 입양됐다. 경찰은 "김길태의 양부모는 이미 자녀가 있었지만 2세 정도밖에 되지 않은 아기가 불쌍해 거둬들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김길태는 그러나 1994년부터 절도 혐의로 소년원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다니던 부산의 한 상업계 고교는 1년도 안 돼 중퇴했다. 이후 폭행·절도·성폭행 등 범죄를 반복했다. 1997년 성폭행 미수로 3년을 교도소에서 살았고, 2001년 부녀자를 10일간 감금하고 폭행해 8년을 복역했다. 2009년 6월 출소했지만 지난 1월 20대 여성을 성폭행하고 감금한 혐의로 수배 중이다.』 (조선닷컴, 입력 2010.03.08 21:23)
가슴에 손을 얹고 정직하게 말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는 나 자신이 김길태보다 더 인간다운 인간이라 감히 자신있게 말할 수가 없습니다.
필자는 1979년도에 서울에서 태어나 건대입구 근처 송정동에서 성장했으며, 중학교 때부터 화양리 건달 패거리와 어울리며 온갖 양아치짓을 했습니다. 그러다 부모님을 쫓아 미국으로 이민을 왔고, 미국에 와서는 마약을 파는 월남계 갱단과 어울리며 다른 아시안계 청소년들에게 마약을 권하면서도 정작 저 자신은 마약을 철저하게 경계했습니다.
심지어 강간, 폭행, 살인미수 등의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에 있었으면서도, 단 한 번도 그와같은 범죄행위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말리거나 신고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와 같은 범죄행위에 동조했으며, 그와같은 범죄행위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흉악범은 그렇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며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절도에서 폭행, 폭행에서 강간, 그리고 살인 등의 순서로 범죄의 질은 점점 더 악해집니다. 만약에 필자가 고등학교 11학년 때(1996년) 주님의 강권적인 은혜를 체험하지 못하고,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았다면, 그 후에 알게된 제 출생에 관련된 충격적인 사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지금쯤 저는 김길태 이상으로 흉악한 범죄자가 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진출처: 조인스닷컴그러므로 필자는 '김길태 사건'에 대하여 분노와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도, 동일한 죄인으로써 자신을 조금도 더 나은 인간으로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왜 저에게는 은혜를 베푸시어 흉악한 살인범, 강간범, 도둑놈이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이렇게 붙잡아 주셨는지, 오직 빚진 마음을 고백할 수 있을 뿐입니다.
결론입니다. 오늘 제가 '김길태 사건'과 제 자신의 과거를 관련지어 회상하고 있는 진정한 이유는 역시 중국에 흩어져 있는 탈북고아들에 대한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입니다.
중국 대련 모 고아원에 방문했을 때, 한국아이 한 명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한국인이면서도 한국인이라 말할 수 없었고, 다른 중국아이들 사이에서 가장 소외되고 외로워 보였습니다. 그 아이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끝내 아무도 그 아이에게 친아빠, 친엄마가 되어주어 아낌없는 사랑을 부어주지 않는다면, 세상은 그 아이를 "길태" 즉 "길에서 태어난 아이"라 부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탈북고아 한 명 한 명에 대하여, 우리 모두가 함께 책임을 통감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샬롬!
j.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