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3.2010

로마서 12장 20-21절 말씀과 북한 문제


생각 1.

죠지 W. 부시 미국 前 대통령이 간증자로 초대된 <6.25 전쟁 60주년 평화기도회>로 인해 진보적인 기독교계에 큰 파장이 일고 있는 가운데, 李萬烈 前 국사편찬위원장을 주축으로 한 여러 좌파 성향의 기독교 단체들이 모여 조지 부시 초청 6.25 전쟁 60주년 평화기도회를 우려하는 기독인 연합이라는 불필요하게 긴 이름의 단체를 형성하는 등, 때아닌 反부시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뉴스앤조이> 기사에 의하면, 이들의 움직임 중에 『'참평화'가 무엇인지 논하는 토론회』가 끼어 있다는 점입니다. 부디 이런 토론회를 통해서 한국의 좌파적 기독교계가 진정한 평화가 무엇인지 진지하고 허심탄회(虛心坦懷)하게 논하고 깨닫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상컨대, 앞으로 모이게 될 『'참평화'가 무엇인지 논하는 토론회』에서는 십중팔구 로마서 12장 14-21절 말씀을 근거로 정부 차원의 對北 식량지원은 물론이요, 이명박 대통령은 김정일을 무조건 만나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는 식의 케케묵은 평화지상주의적(平和至上主義的) 논리가 또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런 발언은 지난 17일에 있었던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에서 이미 나온 개념입니다. 아이러니 한 것은,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과 <6.25 전쟁 60주년 평화기도회>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교계 지도자들이 많이 있다는 점입니다. 대략 5년 전에 있었던 <제3회 열린한민족포럼>에서 이만열교수님이 직접 한국교회는 진보와 보수를 떠나 북한을 지원함과 동시에, 보편적 진리와 사실에 근거한 비판을 하는 등 다각적인 역할 분담을 감당해야 한다라고 발언하셨던 내용이 새삼스레 다시 생각납니다.


생각 2.

북한 문제와 관련하여 로마서 12장 20~21절 말씀에 대한 생각을 간략하게 덧붙이겠습니다.

로마서 12장 20,21절에 보면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참으로 진리 중에 진리입니다. 이 말씀 자체에 대해선 진보든 보수든 구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우리의 원수냐는 것입니다. 국가적인 차원, 민족적인 차원, 보편적인 생명논리의 차원에서 우리 한국 기독교인의 원수는 김정일과 그에 동조하는 정권지배계층이지 애초부터 북한의 일반 주민들은 우리의 원수가 아닙니다. 어떤 분은 김정일은 사탄이지 원수라고도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만, 제 생각에는 김정일은 사탄의 지배하에서 惡의 씨종 노릇을 하고 있을 뿐 사탄 자체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원수'는 김정일이가 분명합니다.

그런데 지금 김정일이 굶주리고 목이 마른 상태입니까? 아닙니다. 김정일은 지금 당뇨나 뇌졸중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식사조절을 해야 할 뿐, 여태껏 한번도 굶주리거나 목마른 적이 없습니다. 또한, 그 주위의 정권지배계층 역시 아주 배부르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 북한에서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은 '배부른 원수'가 아닌 '굶주린 우리의 형제들'입니다!

늑대와 같은 '배부른 원수'들에게 도중에 빼앗기지 않고, 어떻게 힘없고 기댈 곳 없는 북한의 일반 주민들에게 직접 식량을 전달해줄 수 있느냐? 이 문제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는 것이 진정한 "참평화"에 대해 논하는 모임이 되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6.12.2010

추천하는 영화: Five Minutes of Heaven



1990년대 중후반까지 미국 연방수사국(FBI)에서 가장 골치아퍼한 테러조직이 흑인이나 히스패닉 또는 무슬림 계통이 아닌 백인계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요즘은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지만, 미국에서 가장 결속력(結束力)이 강하고 지능적으로 치밀한 테러를 일으키던 범죄조직은 백인계로 이루어진 아일랜드 출신 갱조직이었습니다.

아일랜드 출신 갱조직이 이처럼 강한 결속력으로 뭉치게 된 배경에는 최근까지 이어져온 영국령 북아일랜드(얼스터:Ulster)와 아일랜드 사이의 분쟁문제가 있습니다.

지난 2005년 10월, 비로소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이 공식적으로 무장해제를 확인받은 이후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사이의 갈등은 거의 수그러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아일랜드계와 아일랜드계 사람들 사이의 기억의 문제는 역사평가의 장으로 쉽게 넘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사이의 분쟁사(紛爭史)에 대해 본격적인 평가를 하기 위한 문화-사회적 분위기가 먼저 조성되고 있는듯 합니다. 그런 분위기의 일환으로, 영국 영화계에서는 IRA(Irish Republican Army: 아일랜드 공화국군)이나 UVF(Ulster Volunteer Force:얼스터 의용군) 등의 무장투쟁의 역사를 회상하는 인생담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속속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한편 소개하겠습니다. 영화 "쉰들러스 리스트 (Schindler's List)"에서 오스카 쉰들러 역을 맡았던 리암 니슨 주연의 "Five Minutes of Heaven"이라는 작품입니다.

영화는 1975년 2월 북아일랜드에서 시작됩니다.

17살의 젊은 UVF 단원인 알리스테어 리틀(리암 니슨)은 그릇된 민족의식과 영웅심리에 도취되어 아일랜드계 가톨릭 신자인 지미 그리핀을 사살하기 위한 암살계획을 세웁니다. 알리스테어는 집에서 TV를 보며 한가로운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미 그리핀을 찾아내고, 그의 어린 동생 조 그리핀(제임스 네스빗)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를 저격합니다.

그후 알리스테어는 체포되어 12년간 감옥생활을 하게 되고, 나중에야 비로소 그때 자신의 저격장면을 바라보고 있던 그 어린 소년이 바로 지미 그리핀의 친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그는 세월이 지나 성숙해질수록 어린 조의 겁에 질린 두 눈동자를 잊지 못하고 죄책감에 괴로워하게 됩니다.

한편, 자기 형이 저격 당하는 모습을 목도(目睹)한 조 그리핀은, 형을 구하려는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고 멀뚱하게 바라보고만 있었다는 이유로 자신을 힐난(詰難)하시던 어머니의 책망의 눈빛을 평생 잊지 못하고 역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건이 일어난지 33년이 지난 현재, 어느 TV 프로그램 기획진이 "진실과 화해"라는 주제로 알리스테어와 조의 5분간의 만남을 계획하게 됩니다. 각종 전문가들에 의해 기획되고 진행되는 이 둘의 만남은, 불행히도, 실패로 끝나게 됩니다. 이 짧은 만남을 통해 지난 33년간의 원한을 되갚으려고 몸에 칼을 차고 있던 조가 문 앞에서 도망가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둘은 기획한 것이 아닌 진정한 "화해"의 방법을 찾게 됩니다.

"Truth and reconciliation!" 이 영화에서 수차례 반복되어 강조되는 대사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영화에서 강조하고 있는 "truth"의 진정한 의미는, 역사의 기억을 파헤치고 폭로하는 과거사 청산이 아니라 것입니다. 나 자신의 마음의 문제에 대하여 진실하게 용서를 구하고, 용서할 수 있는 용기를 이 영화는 "truth"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5분간의 천국, 이것은 나 자신의 '쓴뿌리'를 발견하고 이 쓴뿌리를 뿌리째 뽑아내기 위한 단호한 결단을 내리는 그 순간을 묘사한 비유입니다.

마음의 문제, 오랜 쓴뿌리를 아직 품고있는 우리 모두에게 영화 "Five Mintues of Heaven"을 적극 추천합니다.


예고편: http://www.youtube.com/watch?v=uZOE7HgvI3c

(영화는 동네 비디오집이나 Red Box에서 빌리실 수 있습니다.)

6.08.2010

지금 북한선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행동)

:
오늘 저녁시간엔 북한선교에 헌신하신 K선교사님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 자신에게 있어서 K선교사님과 나눈 대화의 시간은, 요즘처럼 부쩍 북한선교의 길이 어둡고 불가능해 보이는 이런 때에, 북한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기도하는 중보자들이 할 수 있는 일(행동)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K선교사님과의 대화 이후, 집으로 돌아오는 먼 길을 운전하며 다시 한 번 생각을 정리해보았습니다. 그래서 몇가지 적어보겠습니다.

첫째, 미국에서 할 수 있는 북한선교의 방법에 있어서 친북파를 통한 평양방문 노선을 과감하게 끊고, 그동안의 친북적 선교방식에 등을 돌려야 합니다. '등을 돌린다'는 말의 의미는, 그동안의 시도와 경험에 대해 진지하게 반추해보며 비판할 것은 분명하게 비판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부분에서 중요한 것은, 소위 친북파로 분류되는 북미나 남미 지역의 이민자들을 아예 사랑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그 사랑의 방식이 무조건적인 관용이 아닌, 반복적인 거짓에 대해선 분명하게 꾸짖어 반성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툼이 일어날까 두려워 마약중독에 빠져있는 형제의 문제와 대면하지 않고 그저 충돌을 피할 뿐이라면, 그 것은 무책임한 것이지 사랑은 아닙니다. 진심으로 그 형제를 사랑한다면 '마약과의 전쟁'까지 선포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친북파에 대한 교계의 입장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친북파를 통한 북한선교방식을 이어왔던 사역자들은 자존심도 상하고 어쩌면 스스로에 대해 기회주의자라는 자책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더이상 친북적 노선을 유지하게 된다면 앞으로 비판의 화살을 피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평양방문을 위해 북한정부에 쥐어줘야 했을 자금의 액수와 흐름에 대해 교계에서 본격적인 의심과 추궁이 시작된다면 큰 낭패를 보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선교단체도 지역사회의 투명성 요구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둘째, 영적인 문제와 인권문제는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북한선교의 실제적 사역에 있어서도 영적인 문제와 인권문제를 통합해야 합니다. 기독교인에게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영적인 교제를 할 수 있는 자유는 그어떤 인권보다 우선적으로 보장받아야 할 권리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작은 소리든 큰 소리든) 소리내어 영광을 돌리는 찬양 역시 기독교인의 영성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영적인 행위입니다. 이처럼 인권문제를 등한시한 채 영적인 문제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어쩌면 영지주의적 영성을 추구한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셋째, 경제특구를 통한 북한주민들에게 접근하는 선교방식 역시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합니다. 물론 경제특구에서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사역은 매우 귀하며 분명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선교사들에게조차 말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제재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북한정부와 당당하게 맞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그 사역 자체의 목적이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선교"인지 아니면 박애주의적 자비(慈悲)활동인지 애매모호함을 극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비활동 역시 의미있는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북한에 대한 각자(各自)의 부르심이 어떤 방향이냐와는 상관없이 북한선교에 헌신된 모든 그리스도인은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등에 갇혀있는 그리스도인 형제자매들에 대해 평상시에 끊임없이 기도하고 세상에 말로써 전해야 합니다. 어쩌면 이 일(행동)이 지금 북한선교를 시작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한 탈북자들과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관계가 어땠느냐와는 상관없이, 탈북자들이 중국에서 당하고 있는 인권유린 실상에 대해 만나는 사람들에게 기회만 되면 설명하고 알려줘야 합니다.(관련기사: "한 번 脫北(탈북)한 사람은 꼭 다시 탈북한다" ) 지나치게 감성적인 간증을 들려줄 것이 아니라, 탈북자들이 당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객관적인 사실부터 알려야 합니다.

요즘 미국 이민 1.5세들에게 북한선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가장 힘든 부분은, 이미 충분히 피곤하고 바쁜 이민생활 중에 북한 문제에 시간과 마음을 할애하여 생각하는 것 자체를 스트레스로 여기고 있다는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각 개인에게 문제가 있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전체적인 관점에서 볼 때 큰 공동체적 죄를 짓고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어 보입니다.

샬롬!

j.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