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7.2011

<리버티헤랄드> 논객님들께

필명 '익명' 님과의 대화를 끝으로 저는 이제 퇴장하고자 합니다. 누구이신지도 알지 못하고, 아주 짧고 간결한 대화였지만, '익명' 님의 인품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익명 님의 말씀에 신뢰가 갑니다.

그동안 제 사랑스러운 아내와 어린 아들을 뒷전으로 하고 밤잠을 설쳐가며 이 토론에 집중해왔습니다.(지금 시애틀은 새벽 3시 16분입니다.) 그 정도로 오대원목사님의 사역도 귀하고, <리버티헤랄드> 논객 여러분들의 사역도 역시 귀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명을 당당하게 밝혀주신 H.Y. 님, P.Y. 님, J.M. 님, K.M. 님, K.H. 님, C.E. 님, 그리고 C.J. 님, 혹시라도 제가 여러 형제님들 자매님들의 인격을 모독했거나 무시했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저는 오대원목사님의 『김정은이 요시야처럼 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자』라는 발언이 지극히 성경적이고 복음적이라고 확신합니다. 김정은을 '사탄' 또는 '사탄의 새끼,' '특정한 적그리스도,' 또는 '짐승(계11:7)' 등으로 부르거나 그렇게 규정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서 이 인간을 제외시켜 버리는 것은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불신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도 역시,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不可抗力的 恩惠)'에 저항할 수 없는 죄인일 뿐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미 다 알고계시는 내용이겠지만 말입니다.

우리는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신묘막측(神妙莫測)한 뜻이 있어서 김정은이를 요시야처럼 되게 해 주신다면, 그는 분명히 모든 반(反)기독교적인 악행을 멈추고, 온갖 우상숭배와 무신론적 경제제도(우상숭배에는 반드시 타락한 경제제도가 함께 갑니다.)를 철폐할 것이며, 처절한 눈물로써 자복(自服)하게 될 것입니다. 북한 내에서 자신의 권력은 점점 약화되고, 심지어 자기 자신과 가족들의 신변이 심각한 위험에 처하게 되더라도, 그는 반드시 친(親)대한민국, 친(親)자유민주주의, 무엇보다 친(親)"하나님 나라"적인 개혁을 감행하게 될 것이며, 어쩌면 암살을 당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내용들이『한반도의 참된 왕이시며, 천지만물의 영원한 주인이신 살아계시는 하나님 아버지, 북한의 김정은이가 요시야처럼 하나님의 절대 주권(主權)을 깨달을 수 있도록, 이 한반도에 은혜를 베풀어주십시오.』라는 짧은 기도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다만, 요시야왕의 말년에 대한 성경말씀의 교훈에 우리 모두가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부디 제 부족한 글을 최대한 열린 마음으로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종교적, 정신적, 경제적, 전(全) 사회적인 개혁에서 성공적이었던 이스라엘의 왕 요시야의 말년은 그다지 좋지 못했습니다. 역대하 35장에 보면, 요시야는 애굽의 왕 느고의 궁수들이 쏜 화살에 맞아서 죽게됩니다.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은, 바로 그 앞부분에 다음과 같은 놀라운 내용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이 모든 일 후 곧 요시야가 성전을 정돈하기를 마친 후에 애굽 왕 느고가 유브라데 강 가의 갈그미스를 치러 올라왔으므로 요시야가 나가서 방비하였더니, 느고가 요시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르되 "유다 왕이여 내가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내가 오늘 그대를 치려는 것이 아니요, 나와 더불어 싸우는 족속을 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사 '속히 하라' 하셨은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르지 말라. 그대를 멸하실까 하노라." 하나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오히려 변장하고 그와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므깃도 골짜기에 이르러 싸울 때에 (역대하 35:20-22)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저 자신에게는 바로 이 말씀이 오늘 저에게 들려주시는 살아계시는 하나님이 음성으로 전해집니다. 즉, 지나친 적개심(敵愾心)과 '(하나님 없이) 내가 스스로 이 상황을 주도하겠다'는 영적인 교만으로 인하여, 시끄러운 세상의 잡음을 뚫고 내 귀에 들려지는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무시하게 될 수도 있다는 메시지 입니다.


존 스토트(John Stott) 신부님에 의하면, "요시야는 26세의 젊은이로서 전국에 걸친 철저한 개혁에" 나서게 됩니다. 그는 개혁의 일환으로 성전(聖殿)을 재건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오래전에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율법서"를 발견합니다. 그래서 그는 "백성을 '무론 대소하고' 광장에 모으고 발견된 율법서를 친히 그들에게 읽어"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서는 그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새롭게 하고 앗시리아와 가나안의 우상들을 성읍과 지방에서 없애고, 산당들을 없애며, 강신술과 유아 희생을 금하고,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지키라고" 명령하기에 이릅니다. 이때 요시야의 개혁을 격려하고 도와주었던 인물이 바로 선지자 예레미야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 "개혁이 피상적일 뿐임을 슬퍼"하였다고 합니다. 이때 선지자 예레미야가 쓴 책이 구약성경의 "예레미야"이며, 패망(敗亡)할 이스라엘의 앞날을 내다보며 슬픔의 눈물로 쓴 책이 바로 "예레미야애가"입니다.


이 모든 일이 있어도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가 진심으로 내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거짓으로 할 뿐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 3:10)

『예레미야는 종종 사람들의 악한 마음의 '완고함'과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 임을 지적하고, 하나님이 그의 법을 사람들 속에 두고 그것을 그들의 '마음에 쓸' 때 즉 새 언약의 날을 바라보았다(렘 7:24; 17:9; 31:33). 그 뒤에 된 일은 예레미야가 옳았음을 증명하였다. 요시야가 주도한 개혁의 결과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그의 아들 여호야김이 그의 선한 일을 재빨리 뒤엎었다. 새 왕은 호화스러운 궁전을 짓기 위하여 강제노역을 시킨 듯하며, 그래서 예레미야의 맹렬한 책망을 받았다.』(존 스토트, 성경연구입문, 86쪽)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한 요시야의 교만을 정의로우신 하나님은 좌시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실, 이것은 요시야 개인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표현대로, 남 유다의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주인으로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발견된 '율법서'의 내용을 "피상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형식은 갖추되,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받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써, 스스로 상황을 주도하려는 치명적인 교만에 빠진 이스라엘의 왕 요시야가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輕視)하는 우매함을 저지르는 것일 뿐입니다. 그리하여 요시야 이후 이스라엘은 급속도로 쇠망(衰亡)하게 되었고 마침내 열강(列强)의 포로가 됩니다.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자신들의 악한 마음의 꾀와 완악한 대로 행하여 그 등을 내게로 돌리고 그 얼굴을 향하지 아니하였으며 (렘 7:24)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 31:33)

어떤 강사나 설교자의 발언을 분석하거나 해석할 때, 아무리 비판하는 입장에 있다고 하더라도, 우선 그 설교나 강의내용 전체를 객관적으로 들어봐야 하며,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역설적(逆說的)인 관점을 적용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오대원목사님의 발언이, 김정은이가 요시야의 말년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고, 그 후대에 북한이 중국 등에 의해 또다시 강점(强占)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듯이 말입니다.

오대원 목사님의 설교나 가르침의 내용은 단순하고 쉬워 보이지만, 항상 그 단순함 이면에 매우 깊은 영적인 교훈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선교사의 자질에 대해서 가르치실 때 항상 강조하시는 것은 "겸손," "섬김," 그리고 "종됨의 도" 등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리더쉽'이나 '왕의 기도,' 이런 강의는 거의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강조하시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스스로 성경말씀을 묵상하여, 성경말씀을 통해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대원목사님의『김정은이 요시야처럼 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자』라는 말에서 저에게 강조되는 부분은 역시 "하나님께 기도하자"입니다. 오 목사님의 이 발언은, 이스라엘의 왕 요시야 이야기 전체를 토대로, 참으로 역설적(逆說的)이게도, 자기 귀에 들려진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요시야의 우매함을 반복하지 말자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무엇보다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진심"으로 묵상하여, 오직 자유케 하시는 "진리"(요 8:31-38) 곧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마 4:4)에 의지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헌법에 대한 수호정신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앞에 가 있어서는 안됩니다.

저를 아낌없이 비판해주시고, 날카롭게 분석하고 지적해주신 형제님들 자매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그동안 제 글로인하여 인격적 모독을 느끼셨거나, 불쾌하셨던 분이 있다면, 부디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 안에서 용서해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이렇게 <리버티헤랄드> 댓글논쟁에 참여한 것은, 저 개인의 자유의사에 의해서였습니다. 오대원 목사님이나 안디옥국제선교훈련원 간사님들은 저같이 무모(無謀)하지 않다는 점 역시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샬롬!

<리버티헤랄드>와 <모아카데미>가 더욱 번성하고, 잘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하겠습니다. 샬롬!

7.17.2011

김정은도 요시야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이시다!

조갑제닷컴에 게재된 필명 '예레미야애가' 님의 "한국교회를 (新)신사참배로 유도하는 외국인 목사"라는 글에 대한 반론입니다.

대한민국 애국세력을 대표하는 인터넷 정론(正論)매체로 알려진 "조갑제닷컴" 웹싸이트에 또다시 안디옥국제선교훈련원 원장이신 오대원(David E. Ross)목사를 아무런 근거 없이 폄하(貶下)하는 글이 게재되었습니다.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언제나 사실전달 정신에 충실한 "조갑제닷컴"이 왜 유독 오대원목사에 대해서만큼은 전혀 근거없는 왜곡을 방치할 뿐 아니라, 이렇게 적극적으로 방조(幫助)하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지난해 9월 22일에도 역시 "조갑제닷컴" 웹싸이트에 실린 비슷한 의도의 공개서신(김성아, "오대원 목사님께") 내용에 대하여 필자는 적극적인 자세로 반론글을 제시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경험담을 소신껏 밝히신 김성아 님의 진지함 자체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존중을 표하지만, 사실과 다른 부분에 관하여서는 분명한 반론을 제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또다시 그때 그 공개서신을 중심으로 하는 근거없는 비방성(誹謗性) 글이 필자가 좋아하는 "조갑제닷컴" 웹싸이트에 게재되었습니다. 정말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로 분명한 문제제기를 하고자 합니다.

우선, 筆名 '예레미야애가' 님의 글 중에 "2. 오대원 목사가 북한선교 캠프에 초대한 인물들"이라는 부분은 순전히 김성아 님의 공개서신을 재탕한 것입니다. 이 내용에 대해서는 필자의 블로그에 이미 실려있는 "한동대국제어문학부 K. 자매님께"라는 글을 참조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3. 한국 기독교는 점령당하고 있다!"라는 부분은 오대원목사와 전혀 상관이 없는 내용이므로 그냥 무시하도록 하겠습니다. 네번째, "진짜 북한 교회는 순교자의 몸이다"라는 부분은 사실 오대원 목사님 본인의 가르침("북한의 숨겨진 교회," "고난 당하시는 종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섬김의 도" 등)이며 필자 역시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내용이므로 굳이 반론을 제기할 이유가 아예 없습니다. 그러므로, "1. 김정은이 요시아왕처럼 되다니!"라는 부분에 대해서만 집중해서 비판하겠습니다.


『김정은이 요시아왕과 같이‘거룩한 전통’에 있는 왕(?)인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다윗,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거룩한 전통에 ‘김정은’을 두고 빗대어 기도하는 것이 기독교 목사가 신성모독임을 모를 수 있을까?』(필명 "예레미야애가" 님의 글에서 발췌)
이 부분에서 예레미아애가 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다윗,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혈통을 일컬어 "거룩한 전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과연 성경 이야기의 주요 등장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사람들이 거룩했습니까? 과연 이들의 인간적 성품이나 "전통" 자체에 거룩함이 있었습니까? 이런식의 발언은 이미 그 자체가 거룩함이 무엇인지를 전혀 알지 못한다는 증거입니다.

인간은 오직 거룩하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만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세상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은혜 없이 스스로 거룩해질 수 없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삶을 한번 보십시오. 다윗은 한낱 정욕을 이기지 못해 자신의 충신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기 위하여 자신의 절대적 권력을 남용해 우리아를 죽음의 상황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또한, 그의 아들 솔로몬은 아내만 700명이었고, 첩은 300명이었습니다. 게다가, 이 수많은 여인들이 이방에서 들여온 온갖 우상숭배를 그대로 방치하여 결국 이스라엘이 망하게 되는 고속도로를 뚫어주었습니다. 그런데도 과연 이들의 전통을 거룩하다고만 할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요시야의 친할아버지 므낫세는 하나님의 성전에 우상숭배를 들여왔고, 그의 아들이자 요시야의 아버지인 아몬은 므낫세의 '우상숭배의 전통'을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특별히 므낫세의 경우, 그 만행이 어찌나 악랄했으면 성경은 그에 대하여 "므낫세가 유다에게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한 것 외에도 또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득하게 하였더라."(열왕기하 21:16)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시야는 달랐습니다. 할아버지, 아버지를 통해 물려받은 사악한 '우상숭배의 전통'을 타파(打破)하고, 성전을 본래의 거룩한 목적을 위해 재건하였으며, 유월절(逾越節)을 회복시키는 등 당시 타락할데로 타락해 있고 부패할데로 부패해 있던 이스라엘 민족의 정신세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아마도 오목사님은 요시야의 바로 이런 점을 강조하신 것으로 여겨집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은 ‘우상을 숭배하여’몰락한 이스라엘왕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우상’이며 그것도 지구상에 존재한 적도 없는 극악한 우상이다. 바알과 아세라가 요시아왕과 같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인가? ......』(필명 "예레미야애가" 님의 글에서 발췌)
우상숭배의 본질은 자기숭배입니다. 내 안에 이미 존재하는 거짓된 허상을 단지 실재하는 어떤 인물이나 물체, 형상, 또는 경험이나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 따위에 의존시키는 과정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김일성, 김정일이 우상이라면, 그들은 그들 자신 안에 있는 거짓된 허상(虛像)을 자기 자신의 형상으로 의존시켰을 뿐입니다. 자기 자신을 숭배하든지 아니면 타인을 숭배하든지 간에 그 차이는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다를 뿐, 본질적인 면에서는 동일한 우상숭배입니다. 요시야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추구하던 우상숭배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즉,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서고 싶은 인간의 본질적인 교만이야말로 모든 우상숭배의 대상이며 근원입니다.

열왕기하 22장에서 23장 사이에 나오는 요시야의 이야기를 잘 읽어보십시오. 특별히 22장 1절에서 2절 내용을 읽어보시면 아무런 부연설명 없이 갑자기 요시야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진지하게 주목해봐야 할 점은, 팔 세에 즉위(卽位)한 요시야의 성장배경은 우상숭배가 팽배(澎湃)하고 전혀 거룩하지 못한 환경이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오대원목사님은 바로 이 부분에서 조명(照明)되는 성경말씀의 메시지를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한국인들에게 전하신 것으로 여겨집니다. 성장배경, 가정환경, 그리고 사회적 분위기는 철저하게 타락하고 하나님을 적대시하여 우상을 섬기고 있더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영원하신 절대자 하나님께서 역사(歷史)에 직접 개입하신다는 것입니다.

과연 요시야 자신의 혈통(血統)이 좋았느냐?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상숭배라는 점 자체로 보자면, 김일성이나 요시야의 할아버지 므낫세나 마찬가지이며, 김정일이나 아몬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요시야의 인간적인 재능 따위가 유난히 뛰어나서 할아버지 므낫세나 아버지 아몬이 배반한 야훼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을 스스로 깨달았느냐? 역시 아닙니다. "요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겨우 팔 세였습니다. 여덟 살 어린아이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겠습니까. 다시 말씀드리자면, 오직 영원하신 절대자 하나님만이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정통 기독교와 무신론적 휴머니즘 사이에 큰 차이가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오대원목사님의 "북한의 김정은이 이스라엘의 요시아왕처럼 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자"라는 말에서 강조되어야 할 점은, 김정은이나 요시야가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자"입니다. 筆名 '예레미야애가' 님의 글은 바로 이점을 왜곡하고 있으며 극구 폄하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요시야가 잘나서 또는 그의 "전통"이 거룩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요시야를 높여주셨다는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시며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시고 영원하신 절대자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에 개입하시어, 요시야를 통해 하나님 자신의 뜻을 이루셨다는 사실을 암시(暗示)해주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 불가능이란 없습니다. 김정은이라고 바뀌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런데 뜸금없이 "신성모독"이라니 이게 웬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