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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3일 새벽(한국 시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 사저(私邸) 뒤에 있는 야산 절벽에서 투신자살(投身自殺)했습니다. 이제 고인이 되신 노 전 대통령은 죽음 그 이후의 세계에 영속(永續)하게 되셨습니다. 이 세상 사람 그 누구도 노 전 대통령의 죽음 그 이후의 상태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이 세상 사람 그 누구도 아직 죽음을 경험하지 못했으므로, 당연히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먼저, 5월 20일 아침(이하 시애틀 시간)에는 좋지 않은 사고가 있었습니다. 제 장인어른께서 갑작스러운 뇌졸중(Ischemic Stroke)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지신 것입니다. 다행히 응급의료진의 신속하고 효과적인 대처 덕분에 생명에 위험이 끼쳐지지는 않았지만, 장인어른의 좌뇌 신경계가 멈춰버려서 오른쪽 몸 전체가 마비되셨습니다. 나중에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지신 후에야 겨우 사람을 알아보시고 눈인사 정도를 하실 수 있는 상태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인 5월22일 저녁 6시 즈음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담한 죽음 소식을 듣게되었습니다. 그날 저녁에 저는 병원 휴게실에서 제 두살배기 아들 요한이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장인어른께 병문안을 오신 김모 집사님께서 저를 보시자마자 하신 첫마디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충격적인 소식이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소식에 마음이 덜커덕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정치적으로 노 전 대통령을 지지했든 반대했든 간에 상관없이, 마치 오랜 가족을 잃은 듯, 마음이 무척 아프고 공허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순간 아찔한 생각이들었습니다. 노 전 대통령처럼 평생을 법정에서 투쟁하다시피 했고, 한 나라의 전직 대통령이라는 비범(非凡)한 삶을 살아내신 분이 겨우 뇌물 수수 사건에 대한 검찰수사의 중압감과 무너지는 자존심, 수치심, 책임감 등의 감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소중한 생명을 함부로 내던지는 이 세상의 현실에 대하여 요한이와 같은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지 노심초사(勞心焦思)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연일(連日), 인터넷 뉴스나 교회 주일설교 내용에도 어김없이 충격적인 소식에 대한 안타까운 메세지가 이어졌습니다.
한편, 5월24일 저녁 즈음부터 장인어른은 부드러운 음식물을 겨우겨우 드시기 시작했습니다. 담당 신경외과 의사의 말에 의하면, 입을 오물오물 움직이면서 음식물을 식도로 넘길 수 있다는 것은 이제 “큰 희망이 있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참고로, 같은 날 아침까지만 해도 평생 손발을 못쓰시게 되실 뿐 아니라 배에다 호스를 꽂아 넣어서 영양분을 공급해야될지도 모르겠다고 아내에게만 알려줬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장인어른의 우측 운동신경계(오른쪽 팔, 다리 등)가 되살아나고 있고, 물리치료와 작업요법(Occupational Therapy)등의 매우 점진적인 치료방법을 통해서 조금씩 회복될 수 있다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다만, 멈춰버린 왼쪽 뇌에게 오른쪽 몸의 존재를 상기시키고 마비된 근육들을 움직이도록 의식적으로 명령하여 스스로의 몸을 포기하지 않도록 장인어른 자신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권면해주었습니다.
그날 밤, 아내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늘 하던대로 아침에 묵상한 말씀을 다시 펼쳐보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오늘은 미국 현충일 'Memorial Day' 입니다. 오늘 날씨는 그야말로 완벽한 시애틀의 여름날씨였습니다. 햇볕은 화창하고 바람은 시원할 뿐 아니라,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마침 이번 Memorial Day 공휴일은 제 아버지 생신과 겹치기 때문에 몇달 전부터 부모님과 형님가족 그리고 우리가족이 모두 함께 1박 2일 여행을 가기로 계획을 잡아놓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와 제 아내는 모든 계획을 취소하고 아침부터 마치 피서라도 가듯 장인어른이 입원하신 병원으로 출발했습니다.
아내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한쪽 손에는 낡은 새번역 성경을 꼭 쥐고 반대편 손에는 요한이를 부둥켜 안고, 입원실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제가 입원실 문 앞에 도착하자, 아내는 장인어른께 “시편 71편을 어젯밤 읽었는데 아빠에게 꼭 읽어줘야 한다”면서 담대한 목소리로 한절한절 또박또박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 말씀은 제 귓전에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졌습니다. 장인어른은 마비되어 일그러지는 오른쪽 얼굴 근육을 어렵사리 움직이시며 매절마다 "아멘!"이라고 외치셨습니다. 그때마다 요한이는 자기도 알아들을 수 있다는냥 방긋방긋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 순간 제 머리 속에는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소중한 생명을 포기하시기 직전에 자신이 평소 사용하시던 컴퓨터 화면에 띄어놓았다는 유서(유서 전문) 내용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노 전 대통령에게 이 시편 말씀을 담대하게 읽어줄 수 있었다면 이토록 안타까운 비극은 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시편 제71편 (표준새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