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2009

초토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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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니제르 서북부 타우아 지방 한 마을에서 영양실조에 걸린 한 살짜리 아기가 앙상한 손가락으로 엄마의 입술을 매만지고 있는 모습』 <사진출처: Daily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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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무차별적인 미사일 로켓 공격이 이스라엘 민간인 지역에까지 날라오자, 이에 참다 못한 이스라엘군이 수천명의 가자시 시민들의 전화기에 "집에 무기가 은닉되었을 수 있음으로 집을 버리고 떠나야 한다는 아랍어로된 셀-폰 메세지를"(Associated Press 12.28.2008) 보냈을 즈음인 12월 27일 밤, 지구 반대편 시애틀에 있는 우리 집에서는 아들 요한가 심한 열을 내며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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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스라엘의 엄청난 미사일 반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연이어 가자 지구의 민간인 사망자 수가 늘어간다는 뉴스 헤드라인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요한이의 증상도 점점 더 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1월 1일부터 요한이는 아예 복통을 일으키며 구토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구토증상이 너무 심해서 꼬박 나흘을 굶더니 1월 5일, 월요일 저녁부터는 다시 열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한밤 중에 뒤틀리는 속과 끓어 오르는 고열로 자지러지는 요한이를 안고 아내와 함께 Seattle Children's Hospital 응급실로 달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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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레벌떡 요한이를 부둥켜안고 응급실 안으로 들어와서 주위를 잠시 살펴보았습니다. 응급실 매인홀에는 유난히 스페인어와 아랍어를 사용하는 이민자들이 많이 앉아 있었습니다. 미리와서 기다리고 있는 다른 아이들의 상태를 보아하니 요한이 정도로는 꾀 오래 기다려야 될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요한이가 긴장이 되었던지 갑자기 소리를 앙~하고 지르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앞에 있던 다른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순서를 양보해주어서 제일 먼저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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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 응급실 안으로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곧 젊은 백인 여자 의사 선생님이 들어왔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아주 간단한 진찰과 몇가지 질문을 해보시고는 요한이가 바이러스(Roseola Virus)에 감염된 것 같다는 예후(豫後)를 내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바이러스에 대한 처방은, 허황하게도, "게토레이" 스포츠 음료수라는 말을 해주셨습니다. 이 바이러스에는 시간 외에 다른 특별한 치료방법은 없고, 단지 구토증상을 다스리고 탈수증에 빠지지 않도록 흡수력이 빠른 스포츠 음료수를 조금씩 양을 늘려가는 방식으로 마시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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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는 난생 처음 맛보는 과일향 스포츠 음료수를 아주 신나게 마시더니 응급실 침대에서 쿨쿨 잠에 들어버렸습니다. 그 사이에 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잠깐 밖으로 나가서 텔레비젼 뉴스를 시청하고 있는 남자 간호사들 사이에 끼어들었습니다. 뉴스의 내용은 이스라엘이 지상전에 전격적으로 돌입하면서 가자시 민간인 수십명이 사망했고 그들 중에는 요한이만한 어린아이들도 끼어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이스라엘군이 식수와 전기 등은 물론이고 구호품이 들어가는 길목까지 모두 차단해 버렸다는 특파원의 멘트를 듣는 순간 눈살이 찌푸려졌습니다. 사랑하는 자식이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해서 가만히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어야만 하는 팔레스타인인 부모들의 처절한 마음이 피부로, 심장으로, 그리고 온몸으로 전율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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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가다듬고 응급실 방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요한이는 그새 일어나서 수술용 고무 장갑으로 만든 풍선-물고기를 엄마 앞에 흔들어대며 재미있게 놀고 있었습니다. 조금 후에 다른 의사 선생님이 들어와서 요한이가 차고 있던 기저귀에 소변이 두툼하게 채워진 것을 확인하더니 곧장 퇴원을 허락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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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7일부터 요한이는 원기를 완전히 회복했고 감량되었던 8 파운드 정도의 체중도 금세 다시 되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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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같은 날인 1월 7일, 가자시에서는 하마스의 함정에 빠진 이스라엘군이 "난민들이 대거 모여 있는 가자지구 UN학교"를 폭격해버렸습니다. 그날, 수많은 어린 생명들이 무참히 스러졌습니다. 이스라엘군을 그 시간 그곳으로 유인한 하마스 무장단체의 잘못인지? 아니면 군사적 논리에만 의지한 이스라엘군의 잘못인지? 가슴이 답답해지고 속에서 메시꺼움 같은 느낌이 올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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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저는 이스라엘의 하마스 공격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이스라엘이 정당한 자기방어를 하고있다는 부시 대통령의 발언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저에게 들려주시는 음성은 그런 정치적인 판단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음성은, 바로 그 문제의 소용돌이 속에 뛰어들 수 있는 용기를 구하라는 촉구와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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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인 지금까지, 한번 제대로 들어본적도 없는 엄청난 폭격소리가 제 귓전에 멤돌고 있습니다. 동시에, 바로 며칠 전까지 밤새도록 들리던 요한이 울음소리 같은 환청이 들리는듯 합니다. 그리고 마치 나 자신의 용기없음을 고해(告解)라도 하듯, 책장에서 시집 한 권을 꺼내들어 시 한편을 곱씹어 봅니다.

초토의 시 9
- 구 상 -

땅이 꺼지는 이 요란 속에서도
언제나 당신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게 하옵소서.

내 눈을 스쳐가는 허깨비와 무지개가
당신 빛으로 스러지게 하옵소서.

부끄러운 이 알몸을 가리울
풀잎 하나 주옵소서.

나의 노래는 당신의 사랑입니다.
당신의 이름이 내 혀를 닳게 하옵소서.

저기 다가오는 불장마 속에서
노아의 배를 타게 하옵소서.

그러나 저기 꽃잎모양 스러져 가는
어린 양들과 한가지로 있게 하옵소서.

("구상문학총서 제3권 깨똥밭" 27쪽, 홍성사)

Associated Press 12.28.2008: http://www.aparchive.com/Search.aspx?remem=x&st=k&kw=Gazans%2C+cell-phone+message#1U590217

사진 출처: 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26053&C_CC=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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