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7.2009

다니엘의 온유한 野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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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은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다니엘 이야기를 주제로한 『사자굴 속의 다니엘 Daniel's Answer to the King』(브리튼 리비에르 Briton Rivière, 1840-1920) 이라는 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지난해 가을에 출간된 찰스 콜슨의 책 <순전한 믿음> 표지그림으로 사용된 그림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다니엘이라는 성경인물을 떠올리면, 왜인지는 모르지만, 지혜롭고 온순한 미소년
美少年 또는 신실하고 착실한 청년 등과 같은 이미지가 생각납니다. 그런데 <순전한 믿음> 겉표지에 사용된 리비에르의 작품 속에 나타난 다니엘의 모습은 전혀 예상 밖의 인상을 전해줍니다.

그림 속 다니엘은 볼품없는 대머리에다 주름지고 창백한 노인의 얼굴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노쇠
老衰한 얼굴로부터 그윽히 흘러나오는 카리스마는 제 마음과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세상 그 어떤 맹수도 감히 도전할 수 없는 강렬한 내적-야성野性이 다니엘이 가만히 서 있는 시간과 공간을 압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나운 사자들이 굶주려있는 살벌
殺伐한 사자굴 속에서도, 작은 창으로 유유히 흘러들어오는 달빛을 온몸으로 맞으며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묵상하고 있는 다니엘의 온유한 야성; 당장 죽음이 임박해 있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주님께 얼굴을 돌리는 그의 올곧은 자세가 놀라웠습니다. 다니엘의 이 온유한 기품氣品에 굶주린 사자들마져 두려움을 느끼고, 암사자 한마리는 그가 응시하는 하늘을 힐끔 훔쳐보려합니다.

"기독교는 강요하는 게 아니라 제안한다. 복음은 대제안이다." <순전한 믿음, 330쪽>

브리튼 리비에르의 작품으로 묘사되는 찰스 콜슨의 책 마지막 장, 마지막 문단이 시작되는 첫 두 문장입니다. 노장
老將 찰스 콜슨의 이 짧은 두 문장은 복음의 점잖은 면을 말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치 굶주린 사자굴 속으로 걸어서 들어가는 노인 다니엘의 위풍당당威風堂堂함과 같이, 기독교의 온유한 야성은 이 시대 문화와 풍조風潮를 반드시 압도한다는 확신에 찬 선언과도 같습니다.

사실 이 시대 모든 그리스도인-나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회복이 있다면 바로 사자굴 속의 다니엘이나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예수에게서 나타난 겸손하고 온유한 야성의 회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순전한 믿음> 제8장 “신분교환”이라는 부분에서 인용된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의 이야기는 우리 시대 기독교가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그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제시해줍니다.

"....4월9일 아침 5시에서 6시 사이, 이들의 사형이 집행되었다.

수용소 의사는 본회퍼가 죽음을 맞던 순간을 기억해냈다.

『반쯤 열린 감방 문 사이로 본회퍼 목사님이 죄수복을 벗기 전에 바닥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뜨겁게 기도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그의 기도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는 너무나 뜨거웠고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을 너무도 강하게 확신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형 집행장에서 그는 다시 짧은 기도를 드린 후 용감하고 침착하게 교수대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몇 초 후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거의 50년을 의사로 일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그렇게 완전히 순종하며 죽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디트리히 본회퍼가 죽은 지 3주 후에 베를린은 해방되었다." <순전한 믿음, 185쪽>



참고: 디트리히 본회퍼의 시 "
나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