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1.2008

화려한 휴전?

5.18민주항쟁에 대한 내용을 소재로한 "화려한 휴가"(이하 "휴가")라는 영화가 스크린을 통해 1980년대 대한민국의 역사를 해석하는 관점은 매우 단정적입니다. 즉, 국가의 공권력이 본연의 위치를 벗어나 월권행위를 넘어서 폭력을 서슴치 않기 시작한다면, 평화와 자유를 사모하는 선량한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 목숨을 걸고 권리회복을 위해 싸우게 된다는 관점이 그 것입니다.

물론 영화의 소재 자체가 이미 역사적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 고정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그 자체에 어떤 해석의 차이점을 제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휴가"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교훈 내지 어떤 메세지를 지금의 시대와 상황에 적용하기 시작한다면, 영화를 통해 전달 받게 될 메세지 속에 역사에 대한 왜곡된 해석이나 희석된 사상은 없나 검토해봐야 합니다.

"휴가"는 선량한 택시운전기사의 평범한 하루일과 속에서 시작됩니다. 배경은 한 도시인데, 데모 시위대와 선량한 민간인들이 뒤섞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데모단 중 일부의 극단주의자들이 반정부 시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곧 시위는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한정된 부류이 시민들이 단순한 생활고에 대한 소통을 위해 데모단에 합류하게 됩니다. 그러나 곧 도시 전체의 반정부적 과격-시위로 발전될 가능성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미 정부는 공수부대까지 동원할 만큼 시위의 성질을 반정부적 대민란으로 규정하고, 도시 전체를 반란군으로 결정합니다.

"휴가"는 이 부분에서 이미 영화의 모든 결정을 내려버리고 '80년대 대한민국 정부의 오판'이라는 스펙트럼을 관객들의 관념 안에 고정시켜버립니다. 하지만, 실은 이와 같은 스펙트럼으로 당시 한국의 역사적 사실을 해석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휴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관계 속에는 전 장군이라는 그림자와 같은 인물의 생각이 대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투시되는데, 이 전 장군이라는 인물이 염려하는 당시 대한민국의 핵심적인 문제는 북한의 남침 가능성에 있다는 것입니다. 나라가 온통 반정부 시위로 뒤숭숭하고 복잡할 때, 그리고 남한 지도자의 정치적 지지도가 땅에 떨어졌을 때, 북한은 남침의 기회를 노린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더 큰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 사전에 내부 반란을 잠식시켜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영화는 바로 이부분에 대한 일부 정치집단의 고정된 해석을 삽입, 관객들로 하여금 무의식적으로 동일한 판단을 내리도록 유도합니다. 그 고정된 해석이란, 북한의 입장과는 상관 없이 단지 전 장군이라는 인물이 전국에 비상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로 진입, 또다시 군사정권으로 나라를 장악하려는 미리 준비된 음모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요? 저는 위와같은 해석은 반은 맞지만 오류의 여지가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방의 책임을 맡고 있던 군인이 쿠데타를 통해 국가의 원수가 되려 하는데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그가 가장 먼저 떠올릴 생각은 당연지사 북한의 남침 우려입니다. 애시당초 쿠테타를 통해 정권을 정복하려는 발상 자체에 문제가 있지만,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시기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 우리는 대한민국 쪽의 입장과 관점만으로 따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북한이 남침을 기도하던 중이었는지 아니었는지 알 방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어쩔 수 없이 '어떻게 알았느냐?'는 덫에 걸리게 됩니다. 이와 같은 한반도의 비현실 같은 현실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세대에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됩니다.

우선, "휴가"라는 영화의 5.18 민주항쟁에 대한 역사적 해석이 잘못되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단지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똑바로 직시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자 예를 들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헌법은 아직도 남과 북의 상황을 휴전-상황이지 종전-상황이 아니라고 명명백백 선언하고 있습니다. 또한 남한의 헌법은 북한에 대하여 불법-반란세력으로써 반헌법적 집단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국정을 운영하는 정부는 모든 일을 추진함에 있어서 바로 이와 같은 휴전이라는 상황과 불법-반란세력으로부터의 치안유지라는 비현실적 현실을 소화하며 진도를 나가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극우는 전쟁분위기를 더욱 자극하고 더욱 강경한 대북정책을 취하는 쪽이고, 극좌는 헌법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 하에 우리끼리 먼저 종전을 선언하자는 쪽이고, 중도는, 매우 모호하지만, 헌법이 상기시키는 비현실적 현실을 인정하며 실제적인 종전을 이루기 위해 쉼 없이 고민하는 쪽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두 동강 난 비참한 비현실적 현실은 결코 무시되어서도 않되고, 왜곡되어서도, 지나치게 강조되어서도 안 되는 민감한 역사교육의 문제입니다. 역사교육의 문제에 있어서, 뉴라이트 진영의 주장은 지난 10년 소위 민주화 세력의 정권하에 많은 부분 왜곡되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반면, 진보연대 진영의 입장은 현재 사용중인 교과서에 어느 정도 비춰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지난 10년 동안 저는 미국 시애틀에서 수많은 유학생, 젊은 이민자, 청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대학생이었고, 대부분의 경우 매우 똑똑한 젊은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로부터 저는 요즘 젊은이들의 세계관 속에 북한에 대한 인식이 거의 멸종되었다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양극화의 산물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데, 무조건적인 관용을 내세우며 마치 현 북한의 문화와 사회가 남한과 여전히 동일하다고 믿는 부류와 북한은 전혀 다른 '어떤나라'일 뿐 우리와는 상관이 없다고 인식하고 있는 부류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헌법이 명시하고 있는 남북관계에 대한 질문에는 금시초문이라는 대답이 대다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시끌벅쩍한 쇠고기 정국을 바라보며 이런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대의민주주의냐? 직접민주주의냐?라는 갈등 속에서 인터넷-민주주의-선진국을 자랑하며 우쭐 될 때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먼저 남한과 북한이 휴전한 것인가? 아니면 종전한 것인가?의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민주주의, 촛불문화제, 광장-커뮤니케이션 등을 자랑하는 용기 있는 시위대들이 과연 북한에 가서도 똑같은 시위를 할 수 있을까요? 왜 담대하게 휴전선을 걸어서 넘어가 평양을 지나 집단수용소에까지 이르러 평등과 자유와 권리 등을 외치는 용기는 없는지 저는 참 궁금합니다. (제가 알고있는 사람 중에 중국 쪽에서 북한으로 걸어가서 심방 다니다 붙잡히신 분이 있는데 북한 군인이 오히려 더 당황했다고 합니다. ) 사실 남북관계의 민감함만 없어진다면 시위에 대해 양쪽 모두 지금과 같이 강경해질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불행히도, 촛불시위에 대한 정부의 시각에는 언제나 오른쪽이냐?왼쪽이냐?의 어쩔 수 없는 색깔논리가 끼어 있습니다. 지난 10년간은 이 헌법을 유능하게 무시해왔던 것이지요. 이런 관점에서 MB 정부는 그 동안 보수진영의 지지를 많이 상실 한듯 합니다. MB의 지지도가 지금과 같이 낮은 이유는, 쇠고기 문제도 있거니와, 시위대와 좌파세력들을 제대로 견지하지 못하는 중립적 고집에 대한 보수진영의 외면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MB 정부를 잘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무능력한 정부를 뽑았다고 후회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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