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점의 흠이나 티끌만큼의 죄도 없으신 거룩하신 하나님의 어린양, 오직 그분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보배로운 피를 흘려주셨기에 인간은 구원을 얻게 되었다고 가르치는 것이 바로 복음(福音)의 핵심적인 메세지입니다.
그리고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이 보배로운 피로써 이루신 구원의 역사(役事)에 대하여 단순히 인간의 죄를 면해주신 "속죄제물(贖罪: Expiation)"로써의 수준을 넘어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전혀 새로운 관계로 재정립되는 "화목제물(和解: Propitiation)"로써의 수준이라는 것을 매우 실제적으로 설파(說破)하고 있습니다.(롬 3:25, 5:11)
주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이 보배로운 피로써 재정립된 하나님과 인간의 전혀 새로운 관계란, 죄의 노예였으며 악의 종노릇하던 인간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으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아빠"(롬 8:15,23)라고 부를 수 있는 "자녀의 권세"를 얻게 된 것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기독교 신앙의 가장 핵심적인 위치에 있는 거룩한 입양의 교리는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복음이 들어가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큰 변화의 바람을 불러 일으키는 복음주의 정신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그저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가문의 대(代)를 이어받을 아들이 없을 경우 가문의 명예와 재산을 대물림하기 위해 이루어졌던 양자제도가,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써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 은혜에 대한 깊은 감동과 신앙을 실제적으로 실천하고자 부모를 잃고 세상에 버려진 어린 고아들을 직접 자녀로 삼는 입양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특별히, 6.25-한국-남침전쟁 이후 급증한 전쟁고아들을 머리색이나 피부색이 완전히 다른 양부모들이 해외에서 스스로 찾아와 이 아이들을 자식으로 삼겠다며 시작된 입양운동(예를 들면: 해리 홀트와 버다 홀트 부부 )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에 대한 깊은 이해와 감동 없이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Korea continues to send children out of the country for adoption; in recent years, roughly 1 of 250 Korean births are adopted by American families alone. There has been a declining trend in adoptions in recent years, but this is only due to a drop in the Korean birth rate, which is now the lowest of any developed country.(Korean Ministry of Health and Welfare, 2002)
한편, 이미 전글에서 확인했다시피, 이슬람교에서는 코란의 가르침에 따라 입양제도 자체를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참고: Adoption Dashboard - Intercountry Adoption Restrictions) 그렇다면 왜 코란의 이런 가르침이 가능할 수 있었느냐? 그 본질적인 이유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애시당초, 이슬람교에서는 '삼위일체'라는 개념을 "쉬르크(아랍어: شرك)"에 해당되는 유일신 알라에 대한 가장 가증하며,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 취급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물론 예수님을 하나님의 선지자로써 높이 인정은 하지만, 동일한 인간인 예수가 어떻게 각 개인의 윤리적이며 도덕적인 행위의 죄에 대하여 대속(代贖)해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전에, 이슬람교에서는 원죄(源罪) 개념을 아예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피를 통한 대속(代贖)적 구원의 역사(役事)가 없어도 인간 스스로의 행위만으로 죄 사함을 얻을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경전인 코란의 가르침에 의하면, 아담의 죄는 아담 자신의 즉각적인 회개로 인해 그 자리에서 자비로우신 알라에 의하여 죄 사함을 이미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슬람교의 교리에서는 죄의 세대에 걸친 전가(轉嫁)라는 것은 아예 없다고 가르칩니다.
중요한 것은, 이 것은 논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인 문제라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을 믿는 기독교인의 입장에서는 창세기에 엄연히 기록되어 있는 역사적 사건에 대하여 완전히 왜곡하여 변질시킨 코란의 내용을 인정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이와 같은 터무니없는 조작에 대해 차마 조소(嘲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무슬림들의 종교심에 대해서는 깊은 경의(敬意)를 표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터무니 없는 역사 왜곡을 담고 있는 코란을 경전으로 믿는 이슬람교가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신구약 성경을 읽고도 인간의 원죄에 대한 가르침을 흐지부지 무시하거나, 또는, 복음의 핵심적인 교리를 교묘하게 오염시키는 기독교 내부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강조하며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거룩한 분노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 기독교-평화주의가 그래서 문제인 것입니다. 거룩하시기 때문에 분노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정의(正義)에 대해서 무지하거나 무시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은 일개 휴머니스트의 영웅적 희생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인류의 원죄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세상의 모든 죄문제에 대하여 인간(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분노의 대상인 "화목제물(Propitiation)"로써의 죽음이었습니다.
"8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으로 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9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되었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으리라는 것은 더욱 확실합니다. 10우리가 하나님의 원수로 있을 때에도 그분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하나님과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에 와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으리라는 것은 더욱 확실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11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자랑합니다. 지금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졌습니다." (로마서 5:8-11, 표준새번역)
그리스도인 한명 한명이 나의 죄를 대신하는 "화목제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얼마나 깊고 실제적으로 깨달을 수 있느냐, 이것이 바로 우리가 얼마나 우리의 가정과 교회를 복음적으로 세울 수 있는지, 그리고 더 나아가, 세상의 고아와 길 잃고 방황하는 이 시대의 이방인들을 우리의 공동체로 입양할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복음의 정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음편에서 계속.....
샬롬!
j.w.s.
도표출처: http://en.wikipedia.org/wiki/International_adoption_of_South_Korean_children
사진출처: http://icarecampaign.springnote.com/pages/5622089
[Why]
"내 아버지는 聖者의 두 아들을 죽였습니다"



위 도표를 통해 표면적으로 알 수 있는 점은, 우선, 카자흐스탄을 제외한 대부분의 이슬람권 국가에서는 어린아이들을 해외로 입양을 보내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2001년까지, 한국이 미국으로 입양을 보내는 3위 국가라는 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2009년까지 조사된 통계조사에 따르면, 조사기관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3, 4위를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