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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시간엔 북한선교에 헌신하신 K선교사님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 자신에게 있어서 K선교사님과 나눈 대화의 시간은, 요즘처럼 부쩍 북한선교의 길이 어둡고 불가능해 보이는 이런 때에, 북한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기도하는 중보자들이 할 수 있는 일(행동)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K선교사님과의 대화 이후, 집으로 돌아오는 먼 길을 운전하며 다시 한 번 생각을 정리해보았습니다. 그래서 몇가지 적어보겠습니다.
첫째, 미국에서 할 수 있는 북한선교의 방법에 있어서 친북파를 통한 평양방문 노선을 과감하게 끊고, 그동안의 친북적 선교방식에 등을 돌려야 합니다. '등을 돌린다'는 말의 의미는, 그동안의 시도와 경험에 대해 진지하게 반추해보며 비판할 것은 분명하게 비판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부분에서 중요한 것은, 소위 친북파로 분류되는 북미나 남미 지역의 이민자들을 아예 사랑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그 사랑의 방식이 무조건적인 관용이 아닌, 반복적인 거짓에 대해선 분명하게 꾸짖어 반성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툼이 일어날까 두려워 마약중독에 빠져있는 형제의 문제와 대면하지 않고 그저 충돌을 피할 뿐이라면, 그 것은 무책임한 것이지 사랑은 아닙니다. 진심으로 그 형제를 사랑한다면 '마약과의 전쟁'까지 선포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친북파에 대한 교계의 입장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친북파를 통한 북한선교방식을 이어왔던 사역자들은 자존심도 상하고 어쩌면 스스로에 대해 기회주의자라는 자책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더이상 친북적 노선을 유지하게 된다면 앞으로 비판의 화살을 피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평양방문을 위해 북한정부에 쥐어줘야 했을 자금의 액수와 흐름에 대해 교계에서 본격적인 의심과 추궁이 시작된다면 큰 낭패를 보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선교단체도 지역사회의 투명성 요구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둘째, 영적인 문제와 인권문제는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북한선교의 실제적 사역에 있어서도 영적인 문제와 인권문제를 통합해야 합니다. 기독교인에게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영적인 교제를 할 수 있는 자유는 그어떤 인권보다 우선적으로 보장받아야 할 권리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작은 소리든 큰 소리든) 소리내어 영광을 돌리는 찬양 역시 기독교인의 영성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영적인 행위입니다. 이처럼 인권문제를 등한시한 채 영적인 문제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어쩌면 영지주의적 영성을 추구한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셋째, 경제특구를 통한 북한주민들에게 접근하는 선교방식 역시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합니다. 물론 경제특구에서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사역은 매우 귀하며 분명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선교사들에게조차 말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제재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북한정부와 당당하게 맞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그 사역 자체의 목적이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선교"인지 아니면 박애주의적 자비(慈悲)활동인지 애매모호함을 극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비활동 역시 의미있는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북한에 대한 각자(各自)의 부르심이 어떤 방향이냐와는 상관없이 북한선교에 헌신된 모든 그리스도인은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등에 갇혀있는 그리스도인 형제자매들에 대해 평상시에 끊임없이 기도하고 세상에 말로써 전해야 합니다. 어쩌면 이 일(행동)이 지금 북한선교를 시작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한 탈북자들과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관계가 어땠느냐와는 상관없이, 탈북자들이 중국에서 당하고 있는 인권유린 실상에 대해 만나는 사람들에게 기회만 되면 설명하고 알려줘야 합니다.(관련기사: "한 번 脫北(탈북)한 사람은 꼭 다시 탈북한다" ) 지나치게 감성적인 간증을 들려줄 것이 아니라, 탈북자들이 당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객관적인 사실부터 알려야 합니다.
요즘 미국 이민 1.5세들에게 북한선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가장 힘든 부분은, 이미 충분히 피곤하고 바쁜 이민생활 중에 북한 문제에 시간과 마음을 할애하여 생각하는 것 자체를 스트레스로 여기고 있다는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각 개인에게 문제가 있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전체적인 관점에서 볼 때 큰 공동체적 죄를 짓고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어 보입니다.
샬롬!
j.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