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2.2009

마스길, 시편 53편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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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대통령의 뇌물賂物 수수收受 사건 수사과정이 이제 최종 결론 부분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도덕적 청렴과 결백을 가장 중요한 정치적 슬로건slogan으로 삼아오던 지난 참여정부 전체에 수치羞恥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습니다. 필자는 지난 참여정부가 추구해온 '퍼주기식' 대북정책이나 반미적 사고방식 등을 비판해왔지만, 이번에 밝혀진 뇌물 수수 사건에 대하여 수치심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인즉슨, 이번 사건의 중심이 누구보다 앞장서서 한국 정치계가 자성할 것과 청렴결백할 것을 촉구해온 자칭 진보세력의 대표적인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사람들이 당대 문화-사회적 상황에서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가장 진취적이고 청렴결백한 삶을 추구했었다는 사실을 전해줍니다. 그중에서 정치적 통수권자로써 대표적인 인물을 한 명만 꼽으라면은 당연히 이스라엘 왕국의 두번째 왕이었던 다윗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경은 다윗의 도덕적 부패 행각에 대한 노골적인 기록을 오늘날까지 만천하에 폭로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충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을 저지르고 임신까지 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범죄행위를 감추기 위한 음모를 계획하고 끝내는 충신 우리아를 죽여버립니다. 이와같은 내용은 사무엘하 11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하 12장은, 한 국가의 통치자인 다윗이 철저하게 은폐시킨 범죄사실이 나단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전격적인 개입으로 인해 만천하에 공개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편 51편에서 다윗은 사무엘하 12장의 상황에 대하여 자신의 윤리적 완벽주의가 철저하게 깨지는 처절한 심정과 수치심을 고백하고, 주님의 죄사함의 은혜를 구하는 간절한 마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을 묵상말씀인 시편 53편 역시 다윗이 쓴 시입니다. 시편 53편의 제목 부분에는 "마스길"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나옵니다. 일반적으로 "마스길"은 음악적인 형식이나 문학적인 장르를 의미하는 표제어標題語 정도로 설명됩니다. 구체적으로, 이 단어의 문자적인 의미는 "교훈을 위한" 혹은 "지혜롭게 하는"이라는 뜻입니다. 이 시를 묵상하며 시인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교훈을 위한" 또는 "지혜롭게 하는" 메세지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우선 주제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시편 51편에서 시인 다윗이 자신의 개인적인 죄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면, 시편 53편은 전인류적 죄人類 에 대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이 시에서 시인은 전인류의 도덕적 부패와 그로 인한 수치심을 토로하며, 인류 전체의 타락에 대하여 통곡하듯 슬퍼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모두 다른 길로 빗나가서
_하나같이 썪었으니,
_착한 일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구나.
_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한 자냐?
_그들이 밥먹듯이
_내 백성을 먹으면서
_나 하나님을 부르지 않는구나.
_하나님이 경건하지 못한 자들의 뼈를 흩으셨기에,
_그들은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도
_크게 두려워할 것이다.
_하나님이 그들을 물리치셨으니,
_그들이 수치를 당할 것이다.』 (
시편 53:3~5, 새번역)

하지만 시인은 그보다 먼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 자체가 바로 부패한 것이라는 전제를 이 시의 시작으로 삼고 있습니다. 시인은, 온통 썩은 악취가 진동하는 참담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영적인 통찰력을 구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 속으로
_“하나님이 없다” 하는구나.
_그들은 한결같이 썩어서 더러우니,
_바른 일 하는 사람 아무도 없구나.
_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_사람을 굽어보시면서,
_지혜로운 사람이 있는지,
_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는지를 살펴보신다.』 (
시편 53:1~2, 새번역)

이 짧은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시인은, 역설적으로, 자신의 눈에 적나라하게 나타난 세상의 온갖 부정과 부패가 오히려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을 품을 수 있는 실제적인 이유가 된다는 것을 선포하게 됩니다. (로마서 3장 참조) 즉, 시인은 오직 오실 그리스도만이 참된 의인義人이시며 그분만이 부정과 부패가 없는 하나님 나라의 유일한 통치자이시니 기뻐하라는 내용의 예언자적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시온에서 나오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십시오!
_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그들의 땅으로 되돌려보내실 때에,
_야곱은 기뻐하고, 이스라엘은 즐거워할 것이다.』
(시편 53:6, 새번역)

이 시대 그리스도인은 시인의 성숙한 영성을 배워야 합니다. 특별히, 이 시대 젊은 그리스도인은 진보냐 보수냐의 차원을 떠나서 이번 뇌물 수수 사건에 대하여 통쾌해 한다거나 절망적인 비관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시인이 애통하는 마음으로 노래하고 있듯이, 사실은 인류 전체가 썩었고 빗나간 길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을 묵상하는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 또는 유명인사들의 부정과 부패를 대할 때마다, 역설적으로, 자기 자신의 죄와 구원의 사건을 기억하고 인류의 타락으로 인한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악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8:18~39 참조)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 보며 영원히 현존하시는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는지 찾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시편 53편이 노래하고 있는 마스길, 교훈이요 지혜입니다.

Copyright © 2009 by Mr. Psalmi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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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2009

성령강림과 통일한국

부활절 이후 첫번째 월요일 새벽입니다.

이 글을 읽게되실 모든 분들의 가정과 삶에 부활의 기쁨과 능력이 충만히 나타나는 부활절 지내셨기를 바랍니다.

기독교 전통 달력에 따르자면, 이제는 부활하신 주님의 승천하심을 기념하는 승천절昇天節과 오순절五旬節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오순절은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려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여러 날이 되지 않아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사도행전1:4-5, 새번역)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명령과 약속에만 의지하여 성령의 강림降臨을 기다리는 제자들의 내면적 평화와 혼란, 환희歡喜와 거룩한 두려움, 기대감과 무기력함이 동시에 교차되는 영성적 상태에 대하여 묵상하는 절기입니다.

초대교회 시대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사도행전 2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비롯한 인류 전체에 전혀 새로운 역사전환歷史轉換의 기점
起點으로써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21세기 새로운 통일한국을 준비하는 모든 한국인 그리스도인에게도 새롭게 강림하시는 성령의 역사使가 필요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한국에서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새터민 청소년들에 대한 기사 두 편을 소개합니다. 남한 사회로 안전하게 들어온 새터민들이 겪고 있는 문화적, 이념적, 정서적 장벽들에 대한 소식을 접할 때마다, 언제 어떤 형태로 이루어질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통일한국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시대 모든 한국인 그리스도인들이 무엇보다 먼저 오순절 성령강림을 기다리는 제자들의 마음가짐으로 그날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통일한국에 대한 문화사회적 대비도 해야하고, 정치적, 사회복지-정책적인 대비책도 마련해 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치열한 어려움은 통일한국을 이루게 될 구성원들 사이의 영적인 충돌에 있을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제자들이 먼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하나님 나라의 능력으로 준비될 때, 새로운 통일한국의 선물
Present을 우리에게 현존하는 오늘Present로 맞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활절 이후 오순절까지, 이 기간동안 '성령강림'에 대하여 묵상하는 것은 통일한국을 준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취해야 할 더없이 중요한 행동입니다.

[
업코리아]
미 언론 “탈북자들, 한국서 이중고”
'죄의식'과 '불안감'에 시달려...일자리 찾기도 어려워

[
Washington Post]
N. Korean Defectors Bewildered By the South
Teenagers are particularly bewilde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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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8.2009

북한 미사일 발사 이후, 두 가지 생각

생각 1.

북한이 미사일을 쐈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은, 북한의 미숙한 미사일 기술에 대하여 겨우 이정도였느냐는 식의 통쾌한 조소
嘲笑를 보내고 있습니다. 아마도 북한의 미사일 기술이 정확성이나 추진력 면에서 허점 투성이라는 것을 이번 기회에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정말 안심해도 괜찮다는 것 같습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안심해도 괜찮겠습니까?

이 시대에 깨어있는 크리스챤이라면, 그럴 수 없습니다! 북한이 이번에 발사한 미사일 개발 및 준비과정에 들어간 비용은 대략 3억
달러 정도라고 합니다. 단순히 '3억 달러'라고 읽으면 이 금액의 현실적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아서 공책에다 몇 번이나 써보고 계산해보았습니다.

'$300,000,000.00' 이렇게 미국 USD 개념으로 쓰면 조금 더 현실적인 무게가 느껴집니다.

'4063억 5000만원' (1354.50 ₩/$ 기준, 2008년 4월 8일 마감,
한국은행) 이렇게 한국 KRW 개념으로 써보면, 그 중압감이 더 강해집니다.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빌리자면, "
지난해 여름 기준으로 3억달러는 국제시장에서 쌀 100만t을 구입할 수 있는 액수"이며 "이는 북한이 겪고 있는 식량난을 1년 정도 해소하고 남는 액수로, 옥수수 등 잡곡을 사면 훨씬 더 오랜기간 식량난을" 해결 할 수 있는 액수라고 합니다.

자그마치 쌀 100만 톤, 즉 10,0000,0000 킬로그램 (10억kg)을 미사일 한 발에 실어서 태평양 물고기들에게 뿌려준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국제 커뮤니케이션학적인 관점에서 북한의 이번 대포동2호 발사에 대한 분석을 해보자면, 김정일 정권 제3기를 위한 내부단속용 더하기 외교적 경고용 폭죽 정도의 의도가 주된 목적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에게 있어서 이번 미사일 발사 사건은 핵미사일에 버금가는 매우 심각하고 잔인한 대
식량난食糧難이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탄과 같은 것입니다.

게다가 북한의 무분별한 행동에 대한 응답 또는 응징으로써 적어도 미국과 일본은 반드시 금융적, 경제적, 정치적 압박을 가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앞으로 최소한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북한과 자유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의 공식 외교 채널들은 차단되거나 어려움이 많이 생길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의 조총련이나 북미, 호주 등의 지역에서 활동하는 친북단체들에 대한 조사 및 감시가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대북선교단체들과 복음적인 NGO단체들의 발이 더욱 바빠질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생각 2.

요즘 저는 매일 아침마다 이메일로 전달 받는 ‘모라비안 데일리 텍스트
Moravian Daily Text’를 따라서 말씀묵상을 하고 있습니다. 마침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 하기 전날 아침에 묵상한 말씀은 로마서 13장 말씀이었습니다.

로마서 13장 1절에서 7절 말씀은 저와 같이 고집스럽고 저돌적이며 논쟁적인 사람에게는 언제나 나 자신에 대하여 돌아보고 고민하게 만드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이미 있는 권세들도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것입니다.”
(롬 13:1, 새번역)

제 두 번째 생각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의 당위
當爲와 법적인 실재實在에 대한 것입니다. 김정일 정권 역시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권세를 부여하신 정당한 국가정부로 인정해야 하느냐, 아니면 “반국가단체”로 정의하고 인정하지 말아야 하느냐는 문제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4조에 의하면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숭실대 법대에서 헌법학을 가르치는 강경근 교수에 의하면 헌법 제4조에 나오는 “자유민주적”이라는 말은 “자유민주주의”를 의미하는 단어로써, 북한의 “인민민주주의”와 명확하게 구분되는 고유명사固有名詞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자동적으로 대한민국 시민이거나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북한 정부를 정당한 국가정부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북한 체제 안에 살고 있는 북한주민들의 경우는 조금 다른 상황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번째 생각은 해답을 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 선생이 "로마서연구"라는 책에서 잠깐 거론한 바 있는 “극히 드물게” 있는 그 “어떤 경우”가 바로 북한의 경우가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즉, 북한의 정권 지배계층은 모든 한국인 그리스도인들의 '평화적 항의'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정치의 부정부패가 극에 달하여 백성이 고통을 당하는 경우라도, 크리스천은 평화적인 수단에만 호소해야 한다. 먼저 겸손과 온화로써 권력자를 향하여 항의(프로테스트)해야 한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항의하며, 그 밖에 평화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모든 수단을 취해야 한다. 백절불굴
百折不屈의 마음으로 목적을 관철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그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무력에 호소하여 반란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평화적인 수단에만 한하고, 그 성공 여부는 모두 하나님의 손에 맡겨야 한다.” ("로마서연구 下" 254-255쪽)

그러므로 제 두 번째 생각은, 북한의 부패한 정권 지배계층에 대한 ‘평화적 항의’란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부끄럽게도, 아직까지는 그저 질문만 이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단지 모든 그리스도인의 최선의 행동이자 존재방식인 묵상하는 삶에 다시 관심을 집중시키며, 오늘 읽을 묵상말씀인 시편 46편을 펼쳐봅니다.

제 46 편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
지휘자를 따라 알라못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 고라 자손의 시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며,
우리의 힘이시며,
어려운 고비마다
우리 곁에 계시는 구원자이시니,
땅이 흔들리고 산이 무너져
바다 속으로 빠져 들어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물이 소리를 내면서 거품을 내뿜고
산들이 노하여서 뒤흔들려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셀라)

오, 강이여! 그대의 줄기들이
하나님의 성을 즐겁게 하며,
가장 높으신 분의 거룩한 처소를
즐겁게 하는구나.
하나님이 그 성 안에 계시니,
그 성이 흔들리지 않는다.
동틀녘에 하나님이 도와주신다.
민족들이 으르렁거리고
왕국들이 흔들리는데,
주님이 한 번 호령하시면
땅이 녹는다.
만군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야곱의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시다. (셀라)

땅을 황무지로 만드신
주님의 놀라운 능력을
와서 보아라.
땅 끝까지 전쟁을 그치게 하시고,
활을 부러뜨리고 창을 꺾고
방패를 불사르신다.
너희는 잠깐 손을 멈추고,
내가 하나님인 줄 알아라.
내가 뭇 나라로부터 높임을 받는다.
내가 이 땅에서 높임을 받는다.
만군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야곱의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시다. (셀라)

(시편 46편,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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