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송이 이름 없는 들꽃으로》이현주 지음, 1984, 298~300쪽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이스르엘에 포도원이 있어 사마리아의 왕 아합의 왕궁에서 가깝더니...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열왕기상 21장 전체). 선지자 엘리사가 선지자의 제자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너는...이르시기를 이스르엘 토지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살을 먹을지라. 그 시체가 이스르엘 토지에서 거름같이 밭에 있으리니 이것이 이세벨이라고 가리켜 말하지 못하게 되리라 하셨느니라 하였더라(열왕기하 9장 전체).
땅은 말이 없다. 땅은 그냥 여기에 있다. 사람들도 이 땅에서 그냥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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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가끔 땅을 자기의 것으로 소유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인간들이 있어서, 비극은 비극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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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연안, 갈릴래아와 사마리아 사이에 있는 들판, 사람들이 부르기를 이즈르엘 평지라 한다. 나는 그곳에서 꽤 여러 십 년 동안 "나봇의 포도밭"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임시로 불리는 별칭과 같은 것이었고 나는 그때나 이제나 변함없는 땅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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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신세를 지면서 그야말로 "몸붙여" 사는 인간들이 멋대로 이름을 붙였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나는 한번도 그들의 손아귀 속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아무도 나를 나로부터 빼앗아가지 못했다. 물론 세월따라 갈아 입는 옷처럼 여러 이름을 지닌 사람들이 이동하고 죽어 가고 다시 태어남에 따라, 나는 포도밭이 되기도 하고 전쟁 마당이 되기도 하고 수풀이 되기도 하고 국경선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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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봇이라는 고집센 사람이 내 품에서 포도나무를 가꾸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나봇의 포도밭"이라고 불렀다. 그런 적이 있었다는 말이다. 이제는 다 까마득한 옛 이야기가 되고 말았지만 그러나 그 시절에 있었던 피비린내나는 비극은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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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왕은 아합이었다. 별로 강하지도 못하면서 강한 척하는 못난 사내였다. 그런데 그가 장가를 잘못 들었다. 잘 들었다는 사람도 있긴 있었다. 요부 이세벨. 요염한 자태와 나긋나긋한 음성, 부드러운 미소 뒤에 녹슬지 않은 칼을 뱀의 혓바닥처럼 숨긴 여인이었다. 아합 같은 못난 사내가 그나마 왕위에 앉아 20여 년 버틴 것은 전적으로 그의 아내인 이세벨의 독기(毒氣) 덕분이었다는 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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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합은 별궁에 왔다가 나를 보았다. 포도나무를 없애고 정원으로 가꾸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나봇을 불러 나를 자기에게 팔라 했다. 제것도 아니면서 사고팔고 하는 것 자체도 우습지만, 죽어도 팔 수 없다고 고집세우는 나봇 또한 나로서는 잘 납득이 가지 않는 인물이었다. 하긴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나한테는 괴상한 수수께끼일 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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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합은 낙심하여 돌아갔고 일은 그것으로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죽어도 팔수 없는 땅이라면 죽여서라도 빼앗아야겠다는 이세벨의 표독스런 손길이 뻗쳤고, 결국 무력한 재판장(즉 허수아비 재판장)과 도무지 뭘 모르는 무뢰배 건달들과 역시 허수아비에 불과한 이른바 유지들이 손을 잡고 나봇에게 돌을 던져 그를 돌무덤 속에 묻어 버리고 말았다. 나는 아합의 별궁 정원이 되었다. 아합은 일의 자초지종을 알고 나서 얼굴을 들지 못하고 옷을 찢으며 단식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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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으로 이미 시작된 비극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나봇의 피로 물든 나의 더운 가슴은 또 다른 피로 젖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합은 전쟁 마당에서 피를 뿜으며 죽어 갔고 그의 아들 또한 반역자의 화살에 가슴이 뚫려, 나봇의 피가 괴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걸레처럼 내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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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부 이세벨, 그는 과연 지독한 여자였다. 죽던 날에도 죽음을 기다리며 눈화장에 머리손질 단정히 하고는 남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던 아들을 죽이고 쳐들어오는 반역자를 욕설로 맞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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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을 죽인 역적 지므리놈아! 그래 일이 잘 되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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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미 그것은 발악일 뿐, 이세벨은 조금 전까지 시중을 들어 주던 내시들의 손에 붙잡혀 높은 창문 밖으로 내던져졌고, 그 작은 몸뚱이에서 튕겨나온 핏방울이 담벽과 군마에 묻었다. 말이 그를 짓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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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시체는 배고픈 들개들의 밥이 되었다. 탐욕스런 이빨이 자기의 부드러운 살점을 뜯어가는데도, 이세벨은 아무런 표정이 없이 곱게 뜬 눈으로 푸른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구역질이 났다. 도대체 내가 왜 이 피비린내를 맡아야 하는가? 내가 어째서 이 역겨운 피로 가슴을 적셔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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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끝없는 탐욕이 부르는 걷잡을 수 없는 비극의 악순환을 과연 무엇으로 단(斷 !) 할 수 있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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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봇의 비극은 그 뒤에도 되풀이되었고 지금도 내 가슴 위에서 진행되고 있다. 신이여, 나를 이 질곡에서 구원해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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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출처:《한송이 이름 없는 들꽃으로》이현주 지음, 1984, 298~300쪽
이현주(1944년~). 감리교 목사이다. 동화작가이며 번역문학가이기도 하다.1944년 충주에서 출생하여 감리교신학대학교에 진학하였다. 신학교 재학시 변선환 박사에게 배웠으며, 졸업후 죽변교회 등에서 목회했다. 1977년 《공동번역성서》번역에 참여했으며,저서로는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시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기독교 평화주의를 주장한《예수의 죽음》(샨티)등이 있다. 진보적인 신학잡지《기독교 사상》에 공동번역성서를 성서번역본으로 한 성서 묵상을 연재할만큼 작가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풍경소리》라는 기독교 잡지를 발행하고 있다. 1970년대 민주화 운동의 정신적 스승이자 '한살림'의 지도자이었던 장일순 선생의 제자이기도 하다.(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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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이 시대의 멘토로, 영성가로 꼽는다. 글이 모이면 책을 내고, 부르는 곳이 있으면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며 살고 있다. 그동안 《기독교인이 읽는 금강경》 《지금도 쓸쓸하냐》 《예수의 죽음》 《길에서 주운 생각들》 《장자 산책》 《대학 중용 읽기》 등을 썼으며,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가 세상에 나오는 데 산파역을 했다. 《숨겨진 보물을 찾아서》 《예언자들》 《바가바드기타》 등 수많은 책을 우리말로 옮겼으며, 《바보 온달》 《콩알 하나에 무엇이 들었을까?》 등의 동화를 쓰기도 했다.(알라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