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2011

한국 改新교회여,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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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남이 한다고 제힘에 겨운 일을 따라 하려면 도리어 낭패를 당한다'는 뜻으로 예로부터 한국 민간에서 구두로 전해져 내려오는 세언(世諺)인데, 최근 불교계에서 이 속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붉은머리오목눈이"라는 박샛과 조류에 속하는 뱁새는 그 덩치는 작고 다리도 짧아 볼품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출혈성 열병의 병원체 바이러스를 보균하고 있는 사실이 밝혀진 것" 말고는, 한국에만 서식하는 이로운 텃새로써 각종 곤충을 잡아먹고 붉은 빛의 부드러운 털과 작고 아담한 크기 때문에 한국인이 좋아하는 새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반면, 그 큰 덩치와 무섭게 생긴 부리와 눈 그리고 징그럽게 생긴 긴 다리를 가지고서 늪지대에 사는 물고기와 개구리 따위를 잔인하게 살육하고, 농사의 효율성을 위해 논에 풀어놓는 미꾸라지를 마구 잡어먹는 황새보다는 오히려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다 다리가 찢어진다는 속담의 진정한 의미는 단순히 '내 능력 이상의 불가능해 보이는 일은 아예 처음부터 포기하라'는 소극적인 뜻이 아니라, '스스로의 정체성과 있는 모습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깨달아 자신만의 고유하고 독특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적극적인 의미라는 것입니다. [1]

이런 한국의 민간 속담 하나에 대해서도 깊은 의미를 부여하여 나름의 종교적 지혜를 가르치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불교인들의 명상적 자세에 대해서는 언제나 진지한 경의를 표합니다.



그런데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소위 '템플스테이(Temple-Stay)' 문제나, 개신교 법조인들의 모임인 '애중회' 예배에 참석한 교계(敎界) 장로이며 국회의원인 황우여 의원의 발언에 대하여 뜸금없이 '종교차별' 운운하며 불필요한 시비를 걸고 있는 한국 불교계의 요즘 모습은 정말 실망스럽고 추해보이기까지 합니다. [2] , [3]
한편, 마치 '황새를 따라가려는 뱁새'와 같이, 기독교계에서도 일명 '처치스테이(Church-Stay)'라는 명칭으로 불교계의 아둔함을 모방하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습니다. '처치스테이'라는 용어 자체가 문제이거니와, 기금 조성을 위한 사업계획 따위로 기독교 교육을 논하는 인물이 한국 개신교를 대표하는 연합체의 총수가 되었다는 것이 한탄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4]
한국 불교가 지금과 같이 부패하고 깊이가 없는 삼류 종교로 떨어지게 된 그 현실적인 원인에 바로 '템플스테이'와 '문화재관리기금법' 등 불경(佛經)의 가르침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정부의 재정정책이나 이른바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관광사업 따위에 열을 올리는 사판승(事判僧)들의 문제가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자력으로 하든 타력으로 하든 상관없이, 한국 불교의 1700년 긴 역사에 비교해 보았을 때 이제 겨우 130여년 정도의 비교적 짧은 한국 개신교의 역사를 문화관광화(化)하겠다는 명목 하에 그야말로 정략적인 사업계획을 공약하는 신임 한국 개신교 연합체 총수의 모습은 마치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지는' 형국이 아닐 수 없습니다. [5]

한국 개신교의 문제는 수도원적 영성(修道院的 靈性: Monastic Spirituality)이 결여된 데 있는 것이지 돈이 없거나 부족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욱 가난하고 고독해져야 하며; 오직 하나님의 임재만을 연습하고 의지해야 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소위 신비적(神祕的: Mystical) 관계를 형성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는 삶, 즉, 성령의 충만함을 매일의 생활 속에서 누리는 존재양식에 모든 것을 헌신하는 삶의 가치를 증진하고 장려해야 하며; 복음의 영향력이 아직 미치지 않은 소외(疎外)되고 어두운 곳을 향하여 세상과 역류(逆流)를 타는 것(Romans 12:1,2)이 곧 한국 改新교회가 양적 성장의 분위기에서 질적 성숙의 깊이로 실제적인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는 길입니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개혁주의 전통에 서 있는 한국의 개신교 기독인들은, 클레르보의 성 버나드(St. Bernard of Clairvaux: 1090-1153)와 같은 중세 신비가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수도원개혁운동이 종교개혁의 불씨가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샬롬!

j. w. 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