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닷컴에 올라온 한동대국제어문학부 K.자매님의 "오대원 목사님께 - '북한인권' 문제는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고요?"라는 글에 대한 반론입니다.>
샬롬!
비록 서로의 생각과 방법은 달라도, 단 하나의 목적(!), "하나님 나라"가 한반도 북쪽에서도 實現(실현)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도 당신의 제자들에게 친히 말씀해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정의와 평화의 음성이 K.자매님의 삶과 사역을 언제나 이끌어 주시길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K.자매님이 스웨덴에 계실 때 미국 워싱턴주 몬로시에 위치한 에임(AIIM: Antioch Institute for International Ministries) 베이스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때 스웨덴에 갔었다면 K.자매님과 만날 수 있었을 텐데, 당시에는 제 아내가 첫째 아이를 막 출산했을 때이고 베이스 사정도 있고 그래서 가지 못했습니다.
지금 저는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공동체생활을 잠시 내려놓은 상태이며 모 회사에 취직을 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북한의 복음화를 위해 항상 기도하고 있으며 시애틀 지역 이민 1.5세들에게 북한에 대해 바른 문제의식을 갖도록 도전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우선 밝혀두고 싶은 것은, 저는 K.자매님의 북한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에 반대할 의양이 전혀 없을 뿐더러, 그 수는 적지만 아직도 한국 젊은이들 중에 K.자매님과 같은 크리스천이 많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용기를 얻고 있습니다.
다만 K.자매님의 편지 내용 중에 몇 가지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기에 그 부분에 대해서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본인의 허락 없이 제가 마치 목사님의 대변인이라도 된 것처럼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 목사님께는 매우 송구스럽지만, 그래도 필요한 반론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3개월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강의내용 정도만으로 오 목사님의 선교관이나 한반도 역사관을 판단하기에는 다소 시간이 부족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K.자매님의 편지 내용이 오대원 목사님에 대하여 그 3개월 동안 경험하신 매우 단편적이며 주관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듯이, 저 역시 오 목사님에 대하여 제 주관적이며 단편적인 관점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저는 오 목사님과 같은 동네에 살면서 지난 10여 년 이상 이 지역 한인교회에서 말씀을 전하실 때 설교를 통하여, 시애틀 화요모임을 섬기면서 비교적 가까이에서, 에임에서 훈련을 받은 후 베이스 간사로 섬기면서, 그리고 지금은 떠나 있지만 마음은 아직도 연결되어 있는 영적인 아버지와 같은 분으로써 제가 만난 오대원 목사님에 대하여 K.자매님의 편지내용 중에 서로 상반되거나 사실이 아닌 부분에 대해서만 (매우 한정적으로) 역시 제 주관적인 관점을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제 글 역시 틀릴 수 있음을 미리 양해해주십시오.
우선 "(편집자주)"라고 되어있는 부분에 오대원 목사님께서 마치 유신 반대 운동을 지지하시다가 추방된 것처럼 쓰여져 있습니다만, 이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오대원 목사님의 부인이신 엘렌 사모님께서 대학생들이 데모하는 도중에 부상당하는 모습을 목격하시고는 미국 대사관에 가셔서 항의하셨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았습니다만, 오 목사님이 직접 데모에 참여하거나 공식적으로 유신체제 반대론을 가르치신 적은 없습니다. 물론 서울대학교 대학생들이 학교에 문을 걸어 잠그고 매우 맹렬하게 집단투쟁이나 단식투쟁을 할 때 학교 내부로 출입할 수 있었던 사람은 故 함석헌 선생님과 오대원 목사님 뿐이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오 목사님 자신은 朴正熙정부나 유신체제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반대하는 발언이나 행동을 하신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유신체제를 반대한 것이 무슨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오대원 목사님께서 추방당하신 때는 1970년대 유신체제 시절이 아니라 ('편집자주'에도 "1980년대"라고 적혀있듯이) 1986년이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이때는 全斗煥정권 시절이죠. 유신체제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국민일보에 실린 오 목사님의 인터뷰 내용을 빌려오자면, 이때가 바로 88올림픽을 준비하던 때였다고 합니다.(참고: 국민일보 기사 "[역경의 열매] 오대원 (12) 88올림픽 앞두고 추방명령 '충격'")
또한 "(편집자주)"라고 되어 있는 부분에 보면 “NKSS에서… 훈련후 평양으로 아웃리치"(연구여행: Study Trip)를 계속 운영해온 것처럼 되어 있는데, 역시 사실이 아닙니다. 솔직히 제가 알고 있기로는 처음 2 회 정도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곧 시행착오였음을 깨닫고 다시는 평양으로 연구여행(Study Trip)을 가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 김성아님도 아웃리치가 아예 없는 훈련과정을 거치셨을 것입니다. 남북교류나 한반도 평화체제 유지가 우선이라고 주장하는 간사들과 북한 내 인권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간사들 사이에 의견 차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러 저러한 이유로 지금은 더이상 평양에 가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東北三省(동북삼성) 지역이나 중국 내 북한 근접지역에서 기도의 실제적인 능력을 직접 실습하고 체험하는 매우 독특한 '中保(중보)기도여행'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기도만 하는 것은 사역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많지만, 기도는 기독교 선교사역에 있어서 가장 실제적이며 중요한 행동이며 사역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만 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편집자"님께서 직접 확인해보시고 만약에 NKSS가 아직도 평양으로 아웃리치를 가는 구상을 하고 있다면 저에게도 알려주십시오. 아니라면 정정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언론의 사실 전달 정신에 남달리 투철하신 조갑제 대표님의 방향성과 어긋나는 한 개인과 특정 공동체의 역사에 대한 歪曲(왜곡)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K.자매님께서 쓰신 편지내용 중에 "NKSS에서 김일성 연구가 서대숙씨로부터 이승만 대통령과 대한민국에 대한 증오를, 그리고 북한과 김일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배웠습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옳은 말씀입니다. 그것은 徐大肅(서대숙) 박사님 개인의 관점이지요. 저는 徐大肅 박사님의 관점에 대해 반대하며 비판적입니다. 이분은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런 관점은 徐 박사님 개인의 관점이라는 점과 이분은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점을 미리 염두에 두시고 들으셨으리라 여겨집니다. 그 자리에서 충분히 반론하시고 논쟁을 하실 수 있었다면 좋았으련만, 그럴만한 분위기가 조성되지 못한 것은 정말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제 徐大肅 박사님은 NKSS 강사로 오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내부 사정은 저 역시 알 수 없지만, 더 이상 徐 박사님을 NKSS 강사로 초청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북한 정권을 상대할 때에는 그들을 자극할 수 있는 북한주민들의 인권문제는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목사님(오대원 목사)이 말씀하셨다는 부분, 이것은 선교사가 직접 북한 정권(북한 정부 관계자)을 상대할 때인 것 같습니다. 정확하게 어떤 상황에 대해서 이런 발언이 나왔는지는 앞뒤 문맥을 알 수 없어서 뭐라 변론을 해야 할지 조금 모호하지만, 아마도 피터 양 목사님과 같이 人道主義的(인도주의적) 사역을 하시는 분에 한해서 적용되는 말인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바로 다음 문장에 피터 양 목사님 이야기가 나오는군요. 아시다시피 피터 양 목사님은 이민 1.5세 캐나다인으로 북한의 고위 관리들과 직접 교류하며 나름대로 진실하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계십니다. 피터 양 목사님의 친북 성향의 사역 방식(북한 고위 관리들과 직접 교류하며, 평양에 방문하는 사역)에 대해서는 예수전도단(오대원 목사 창립) 내에서도 이미 충분히 비판을 받고 계십니다. 하지만, 양 목사님과 같은 사역도 필요하다는 것 역시 사실인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더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단, 피터 양 목사님은 현재 오대원 목사님께서 직접 지도하시는 안디옥선교훈련원 소속이 아니십니다.
그런데 피터 양 목사님이 “탈북자 말을 믿지 말라”고 하셨다는데, 저는 무엇인가 심각하게 왜곡(歪曲)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마도 “탈북자의 말이라고 무조건 믿지는 말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분명히 무엇인가 심각하게 곡해(曲解)하고 있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오대원 목사님과 관련된 모든 공식사역은 이중언어(영어와 한국어)로 진행됩니다. 동시통역이 제공되었을 텐데, 조금 더 정확하게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시면 어떨까요? 왜냐하면 오대원 목사님 주변에는 탈북자 출신으로 친딸처럼 여기시는 분도 있고 그러거든요. 그런 분들이 들으시면 오해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애틀 지역에서는 한 달에 한두 번씩 오대원 목사님이 인도하시는 북한을 위한 중보기도 모임이 있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매번 참석했었는데,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입니다. 한동안 민감한 분위기도 있었는데, ‘인권이 먼저냐? 예배의 회복이 먼저냐?’ 뭐 이런 식의 논쟁이었습니다. 정말 쓸데없는 논쟁이지요.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예배의 회복을 위한 길이요, 예배를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인권을 보장하는 길이지요. 그런 논쟁이 있고 바로 다음 모임에서 오대원 목사님은 자료를 직접 프린트해오셔서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참석자들에게 나눠주시며 한국과 일본 등에서 북한으로 납치된 납북자들에 대한 문제의 심각성을 설명하시고, 매 모임마다 납북자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직접 인도하셨습니다. 동시에 북한 내 인권상황에 대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 역시 잊지 않으셨습니다. 참고로 말씀 드리자면, 에임에서 말씀묵상과 중보기도 사역은 가장 중요한 중심사역입니다.
분명히 무엇인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홍정자 사모는 故 홍동근 목사의 부인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갑자기 헷갈리는군요. 홍동근 목사님은 작고하신 한경직 목사님이 목회하시던 때에 영락교회 부목사로 계시다가 미국 LA지역에서 목회를 하시던 한국의 대표적인 기독교-사회주의자입니다. 나중에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기독교(아마도 기독교-사회주의)를 강의하시다가 평양에서 돌아가신 분이지요. (예전에 김동길 교수님께 “적화통일이면 어떻소”라고 말씀하셨다가, 김동길 교수님이 그분께 “그러면 북진통일이면 또 어떻소”라고 엄포를 놓으셨다는 바로 그 홍동근 목사님입니다.) 명백한 기독교계의 친북파이십니다. 평양에 무슨 열사릉인가 하는 곳에 묻히셨다고 들었습니다.
저 역시 오 목사님이 홍동근 목사님의 기독교-사회주의나 홍정자 사모님의 친북-활동에 대해서 비판하시는 것을 들어보진 못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오 목사님께 직접 홍동근 목사님의 기독교-사회주의에 대하여, 또는 홍정자 사모님의 친북-활동에 대하여, 복음주의 기독교 선교사의 관점에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물어본 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안디옥선교훈련원 내외의 관련자들 중에는 홍정자 사모님과 같은 친북파를 통한 북한선교 사역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반대하는 분들도 많이 있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런데 故홍동근 목사님과 친분이 있고 부인이신 홍정자 사모님을 강사로 초청하신 오대원 목사님이 문제라면, 주체사상 이론가이신 黃長燁(황장엽) 선생님의 '인간중심의 철학'의 독창성을 높게 평가하고 저서를 추천하신 대한민국 애국세력의 대표 趙甲濟 대표님은 주사파이거나 人本主義者(인본주의자)라고 해야 하며, 李御寧(이어령) 박사님이 명예원장으로 계신 '양화진 문화원'에서 다음 주 목요일 저녁에 참여연대 출신 朴元淳(박원순) 변호사를 강사로 초청했으니 '알고보니 한통속'이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릴 것은, NKSS는 현재 진행중인 다양한 북한사역의 형태를 짧은 기간 동안 접해보고 기도와 예배를 통해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특정한 사역을 프로젝트 형식으로 구상해보는 시간을 제공해주는 특별한 프로그램입니다. 그 핵심에는 나와 하나님, 우리와 하나님, 그리고 우리와 세상(NKSS의 경우 북한)이라는 삼중적 공동체관(觀)이 있습니다. 그런데 K.자매님께서 이 “3개월 간의 강의를 들으며, 저는 ‘이것은 옳지 않다’고 외치는 제 양심의 소리와 목사님의 가르침 사이에서 극심한 혼란을 느꼈지만 결국 목사님의 생각을 따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당시 제게는 수많은 한국교회 목사님들의 인정을 받고 있는, 고명하신 목사님의 가르침을 무시할 만한 용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씀하신 부분이 마음에 많이 걸립니다. 왜냐하면 저는 지금까지 안디옥선교훈련원과 관련이 있는 친북적 선교사역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반대하면서도, 오대원 목사님의 본심이나 본지(本旨)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친북적인 인사로 분류되는 당사자들에게 물어보시면 더욱 확실하게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물론 오대원 목사님의 카리스마(?)에 눌리는 기분이 들 때가 많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지하게 때로는 마음속의 깊은 회의까지도 오 목사님께 직접 상의하셨더라면 아마도 목사님 역시 마음을 열고 당신의 생각을 나눠주시지 않으셨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정말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그 전에, 오 목사님 자신은 그렇지 않은데 마치 그런 것처럼 미리 예단하고 물어본다면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결론입니다. 저는 오대원 목사님에 대하여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만을 따르고자 평생을 헌신하신 예수의 弟子(제자)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오 목사님은 자신에게 주어진 지상명령의 사명을 망각하지 않고 전도의 대상에 한계를 정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오대원 목사님은 그 대상이 친북파이든 김정일이든 구분하지 않고 그 앞에서 자신이 해야 할 말과 행동을 명확하게 알고 계시는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일 뿐입니다.
북한의 복음화를 막고 있는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일까? 우선 북한 밖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하나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아마도 오대원 목사님에 대해 조갑제닷컴에까지 비판하는 글이 올라오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참되고 영원한 평화와 공의 그리고 은혜가 K.자매님의 삶과 사역에 항상 함께 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샬롬!
---> K.자매님의 답글(조갑제닷컴): (1) 신정우님 안녕하세요. 이제까지 올려주신 댓글, 모두 신중히 읽어보았습니다. 신정우님께서는 '아무래도 제가 3개월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을 목사님과 함께 보냈기 때문에 그 분의 방향성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계신 것 같습니다. (2) 하지만 그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이유를 설명 드리기에 앞서 제가 참석했던 NKSS는, 오대원 목사님께서 기획하신 훈련과정이었다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3개월이라는 훈련기간과 강의의 방향성은 목사님께서 결정하신 사안이었고, 그에 대한 영적 책임은 오대원 목사님께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신정우님께서도 이견이 없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낸 2007년 가을의 3개월은, 제가 수료한 NKSS의 방향성 조차 파악하지 못할 정도의 짧은 기간이 아니었습니다. (3) 스쿨의 방향성을 이해하는데에는 3개월이라는 '시간의 길이'보다 당시 훈련과정 중에 '얼마나 성실하게 참여하였는가'의 여부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훈련의 전체 기간이 1년인 프로그램에 3개월 만을 참여한 경우와 훈련의 전체 기간이 3개월인 프로그램에 3개월을 모두 참여한 경우, 이 둘 사이에는 훈련을 이해하는 정도에 있어서 분명히 큰 차이가 있습니다. 두 경우 모두 '3개월'이라는 같은 시간을 훈련에 참여했지만 전자의 경우에는 훈련과정의 25%만을 참여하였기 때문에, 전체 훈련과정에 모두 참여한 후자에 비해서 훈련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것입니다. (4) 저는, 혼란이 극에 달해서 수업에 참석하지 못했던 하루 (제가 기억하기로 그 날은 수업이 없었습니다.)를 제외하고는 NKSS의 시작일부터 졸업식까지, 모든 수업에 참석했습니다. 즉 목사님께서 기획하신 전체 강의와 연구활동에 참석하였고, 그에 대한 증명으로 훈련에 대한 수료증을 받아왔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저는 훈련의 방향성을 파악하기에 충분한 시간을 가졌고, 앞서 글에서도 말씀드린 것 처럼 훈련이 끝날무렵에는 목사님의 생각을 따르기로 결정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5) 따라서 '제가 훈련의 방향성을 이해하기에 다소 짧은 시간을 가진것 아니냐'는 신정우님의 생각은, 제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신정우님, 신정우님께서 제기하신 문제는 제 글의 논지와 결론에 영향을 줄 수 없는 내용들입니다.
---> 신정우 답글(조갑제닷컴): (1) K.자매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야 비로소 K.자매님과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네요. 반갑습니다. 우선, 안디옥선교훈련원은 저에게는 영적인 고향과도 같은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개인의 주관적이고 단편적인(일반 관객의 입장에서 직접 참여하는 간사생활까지 모두 대략 12~3년 정도의 관계) 관점을 말씀 드리는 것이라고 미리 밝혔던 것입니다. K.자매님께서 훈련과정 자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과정 자체만으로 오 목사님에 대해 판단하는 것이 주관적이고 단편적으로 보인다는 의미였습니다. 시애틀에서 함께 말씀공부를 하던 청년들 중에 한동대 출신이 서너명 있었습니다. 모두 출중한 지성과 영성을 겸비한 젊은 인재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K.자매님이 훈련에 임했던 태도 자체를 의심하거나 비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2) 그리고 모든 YWAM 사역이 그렇듯이, NKSS 역시 사역을 준비할 때에는 참여하는 모든 간사들이 1년 이상 매주 2~3회 정도 모여서 기도하고 조사하고 함께 나누면서 그 방향성과 일정을 계획합니다. 당시에 저는 NKSS 간사도 아니었지만, 매주 기도모임과 연구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사실 스웨덴에서 있었던 NKSS 준비과정 중에는 다른 간사님이 실무 책임자이셨습니다. 하지만 말씀하신대로 "그에 대한 영적 책임은 목사님께 있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이지요. (3) 그런데 혹시 K.자매님은 오대원 목사님께서 북한주민들의 인권문제를 완전히 무시하시는 분이라고 여기시는 것인지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K.자매님의 글에서도 나타나듯이 목사님 자신이 "북한 정권"과 "북한주민들"을 확실하게 구분하시지 않습니까. 전체주의, 주체사상에 물들어 있는 反인권론자들은 기본적으로 이런 말을 하지 않지요. 개인적으로 제 외가 친척들 중에 김일성주체사상에 빠져서 명절 때만 되면 "우리 위대한 아바이 수령님" 어쩌구 하며 술잔을 돌리는 소위 주사파, 골수 친북파들이 여럿 있어서 잘 압니다. 사실 오대원 목사님은 북한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권을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오대원 목사님의 "북한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기도책자 스무 번째 날 기도문을 다시 한번 확인해보십시오. "한 어린이 한 어린이"의 이름까지 부르며 기도하라고 강조하십니다. 아시다시피 이 기도 안내 책자는 1998년에 있었던 제1회 NKSS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4) 그리고 한 가지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 K.자매님은 그때 수료하신 NKSS 훈련과정의 방향성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K.자매님의 편지를 처음 읽었을 때에는 오 목사님이나 피터양 목사님, 서대숙 박사님, 홍정자 사모님 등에 대해서만 문제를 제기하시는 줄 알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스웨덴에서 진행된 NKSS에는 K.자매님의 편지내용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다른 강사님들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분명히 북한 내 인권상황과 관련된 사역을 하시는 분도 있었지 않습니까?(북한말 성경제작에 동참하시는 탈북자 출신 여성분? 북한 내 인권 관련 사역을 하시는 S.선생님?) 간사님들 중에도 북한 내 인권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평양 방문을 반대하시는 리더들도 서너명 있었고요. 그런 이야기를 빼고 나머지만 기억하시는 것이 조금 아쉽고 그렇습니다. 오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이것은 제 개인적인 경험입니다. 저는 AIIM에서 강의를 듣고 훈련을 받고 그럴 때 처음에는 제 생각과 반대되는 강의에 대해서만 강하게(부정적으로) 기억하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강의에 대해서는 그냥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물론 다혈질적인 제 성격 때문에 그런 경향이 있지만 말입니다. (5) 본의 아니게 K.자매님을 비판하는듯한 느낌을 드렸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오대원 목사님에 대하여 사실과 다른 내용이 한국 보수주의 운동의 대표적 웹싸이트인 조갑제닷컴에 올라온 것에 제가 너무 흥분을 했던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자면, K.자매님의 편지내용 밑에 부분에 적힌 성경적인 생각에 대해서는 반대할 의양이 전혀 없을 뿐더러, 오히려 용기를 얻고 있습니다. 다만, 오해하신 부분에 대해서만은 꼭 말씀을 드려야겠다 싶었습니다. (6) 어쨌든 K.자매님처럼 열정적이고 비판할 때 비판할 줄 아는 젊은 인재를 놓친 것은 에임 입장에서도 그다지 긍정적인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K.자매님이 그때 하루 강의를 빠지실 정도로 내적인 회의와 갈등이 있었다고 하셨는데(어차피 그날은 수업이 없었다고 하셨지만), 그 갈등과 회의는 아마도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어쩌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모든 크리스천들이 끝없이 혁신(革新)해야 할 영적인 "식역(識閾: Limen)"이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Samuel Rutherford나 Edmund Burke 등의 사상가들이 성서적 진리 위에 그 기반을 닦은 정통 기독교-보수주의를 지지하고, 한반도 상황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선호하지만, 그래도 이 모든 것이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매사에 오직 성경말씀을 영원불변(永遠不變)의 절대적 진리로 여기면서(보수) 유한한 세상의 상대적인 현실에 대해서는 끝없이 개혁해 나가야 할 부분(진보)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는 말아주십시오. K.자매님은 이미 그러고 계시겠지만 말입니다.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빌1: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