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역시 이 친구의 말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이 친구의 주장에는 "우리 세대"라는 세대적 범위가 전제(前提)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 30대에서 40대 사이 소위 '실크세대'에 속하는 '우리 세대'의 북한선교계에서는 로버트 박 형제가 거의 최초로 담대한 행동주의적 모델을 보여줬습니다. 그러나, 그 수는 많지 않지만, 현재 연령대가 70대 이상이신 원로 선교사님들 중에는 벌써부터 북한사람들을 상대로 직접적이며 효과적인 복음전도사역을 묵묵히 감당해오신 사역자들이 몇 분 계십니다. 그 대표적인 사역자 한분을 소개하자면, 1990년도부터 ㅊ국 ㄷ지역에서 소위 "캠프사역"을 최초로 시작하고 운영해오신 '조선선교사' 김만조목사님이 있습니다.
김만조목사님은 현재 고혈압과 뇌졸중, 그리고 심한 치매증세로 충청북도 옥천에 위치한 나실인수도원(수도원장: 윤연순 뵈뵈)에서 요양중이시기 때문에 모든 사역활동을 완전히 멈추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김만조목사님의 본명과 현재 상태를 밝혀도 더이상 문제될 것이 없다고 여겨집니다.
본래 한성기업에서 운영하는 원양어선(遠洋漁船) 선장이셨던 김만조목사님은 중년(中年)이 넘어서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迎接)하시고 비로소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셨습니다. 그 후, 비록 미성숙한 신앙과 영성이었지만, 곧장 선교현장에 온몸을 던지셨습니다. 아마도 '모든 그리스도인은 선교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아주 단순한 신앙의 표현으로 남은 삶 전체를 가장 극단적인 하나님의 사역에 직접 헌신하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천성적으로 타고난 어부(漁夫·漁父)이신 목사님의 거친 바다와도 같은 성격에 대하여 과격하고 독단적이라는 비판도 많았지만,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는 전도적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 정말 모든 것을 다 포기하신 모범적인 선교사이셨습니다. 김만조목사님은 무엇보다 교회개척에 특별한 은사가 있는 개척자로써, 1980년대부터, 누구보다 앞장서서 러시아, 중국, 몽골, 그리고 북한내에 가정처소교회를 세우는 사역을 해오셨습니다.
러시아 형제자매들과 함께한 김만조선교사, 두번째 줄 맨 오른쪽. 나실인수도원 게시판
1990년도부터 김 목사님은 ㅊ국 ㄷ시에 진(陣)을 치고, ㅊ국으로 친척방문을 나온 북한사람들에게 직접 복음을 전하는 "캠프사역"과 함께 탈북(脫北)사역을 병행하셨습니다. '캠프사역'이란, ㅊ국 변방지역에 있는 작은 아파트 한 채를 얻어서 북한사람 한두명과 함께 공동생활을 하며 복음의 진리와 세상의 현실을 전하는 전도사역을 말합니다. 이 '캠프사역'에는 특정한 단계가 있는데, 제3단계에 이르면 복음제시와 제자훈련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본인의 의사에 따라 북한으로 다시 들어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物心兩面)으로 지원하고,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하거나 다시 ㅊ국으로 방문을 나오게 하여 상황보고를 주고받으며 다양한 방식의 사역을 진행하게 됩니다.
북한내 가정처소교회들과는 ㅊ국-동포 사역자들을 통해 소식을 주고 받으셨으며, 김 목사님 스스로 두어 차례 ㅇ강을 건너 북한으로 잠입(潛入)하여 북한내에 실재하는 비밀-가정처소교회를 본인이 직접 방문, 확인하고 격려하신 적도 있습니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번은 북한에 들어가셨다가 초병들에게 붙잡히신 적도 있습니다. 목사님 본인의 증언에 의하면 초병에게 잡히자 그냥 웃음이 나오더니 '미친척하고 초병들에게도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몇 해 전 시애틀에 방문하신 ㅌㅅ사모님의 증언에 의하면, 그때 모장군이라는 사람이 ㅌㅅ사모님께 전화로: '이거 웬 미친X이 강을 건너와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어요.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오히려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ㅌㅅ사모님은 '그냥 잘 대접해서 며칠 재우고 내보내세요'라고 답하셨답니다. 참고로, ㅌㅅ사모님과 김만조목사님은 서로 만나신 적이 없으십니다.
2003년도에 들어서면서 김만조목사님은 '위화-프로젝트'라는 위화도(威化島)-개발사업을 추진하셨는데, 사실 이 '위화-프로젝트'라는 것은 탈북사역에 대하여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던 참여정부에 대한 연막(煙幕)이었을 뿐 실제로는 북한에서 중동지역으로 파견을 보내는 고위 군사전문가들과 그 가족들을 탈북시키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물론, 김만조목사님은 위화도의 지정학적 위치에 대하여 중국의 "東北工程" 작업과 新제국주의 정신을 견제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불행히도 탈북을 시도하던 고위 군사전문가들 중에 한 사람이 붙잡히게 되었고, 북한내로 자금을 전달해주던 알선자는 돈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김만조목사님은 많이 의기소침(意氣銷沈)해지셨지만, 2008년까지 계속 ㅊ국 변방지역에서 활동하셨습니다. 북한에서 보낸 납치조 문제로 한국 국정원에서 김만조목사님에 대하여 출국금지령을 내렸음에도, 당뇨와 고혈압으로 인한 뇌졸중으로 쓰러지시기 전까지 계속해서 북한으로 잠입을 시도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순교로 마감하고 싶은 간절한 염원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비록 김목사님의 질풍노도(疾風怒濤)와 같은 성격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며, 사역자로써 제1의 사역터인 가정을 돌보지 못한 무책임한 가장이라는 세간(世間)의 비난도 피할 수 없지만, 필자는 김만조목사님과 같은 북한선교계의 행동주의적 사역방식에 대한 긍정적인 검토와 기록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사람들에게 직접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福音)을 전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세계 최악의 인권유린-집단, 기독교박해-세력의 온갖 역(逆)겨운 불의(不義)와 상대해야 하는 북한선교계의 특성을 생각해 볼 때, 탁상공론(卓上空論)에만 익숙한 "우리 세대"에게 김만조목사님의 행동주의적 사역의 발자취는 좋은 길 안내가 되어줄 것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샬롬!
j.w.s.
사랑하는 김만조 선교사님께서 오늘(한국, 2010.12.20) 오전 11시 40분에 소천하셨습니다. 힘들고 피곤한 몸과 마음 이제 주님품에 평안히 쉬소서! 당신이 못다 이루고 간 소중한 일들, 우리 몫으로 알고 기도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버지 나라에서 좋은 모습으로 뵙기를 원하며, 더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임마누엘! 나실인수도원 게시판